아스토르가 - 폰세바돈
오늘 아침도 D와 O가 사두었던 재료로 해 먹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배부르게 맛있게 제대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달걀을 삶아 원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다.
짐을 꾸려 먼저 알베르게를 나오는데 뒤에 나오던 D가 '홀리안이 집으로 돌아간다' 고 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보니 홀리안 갑자기 맥이 빠진 사람 같은 표정이다.
어제저녁도, 오늘 아침도 먹는 것을 보지 못했었는데
D와 O랑 어울리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발에 상처도 많았고 단짝 죠셉도 앞서 가버려서 그랬는지 힘이 없어 보였다.
서로 안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디오스, 살루트.. 아스따 루에고."
조금 엉뚱하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해서 편했던 홀리안.
카우치서핑을 열어놓을 테니 스페인에 다시 오면 꼭 들르라고 했다.
다시 갈 일이 있으려나.
사진기를 들이대니 D도 O도 약속이나 한 듯 후다닥 양옆으로 비켜준다.
성당을 배경으로 둘의 사진을 찍으려고 한 건데..
아스트로가를 빠져나오며 내가 조금 빨리 걸었을까,
아니면 낯선 타국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끼리의 수다 때문일까,
그녀들이 조금씩 뒤쳐졌다.
마을 어르신이 '부에노스 디아스' 하고 지나간다.
"부에노스 디아스-"
아스토르가 외곽으로 막 빠져나오면 작은 교회가 있다.
기둥 돌판에 여러 나라의 언어로 어떤 문구를 새겨놓았다.
한글도 있네.
그런데 어째 어감이 이상해..
'신앙은 건강의 샘'
어색하다.
'신앙은 건강의 원천'이나 '신앙은 건강의 근원' 이 자연스럽지 않나.
우리말 '샘'보다 한자어가 더 익숙하다.
좀 더 가니 기모노 사요꼬가 보였다.
뒷모습은 몰래 찍고.. 파파라치처럼.
"사요꼬, 사진 좀 찍어도 돼?"
물어보고 앞모습을 찍었다.
사요꼬가 어떤 모습으로 걷느냐 하면..
이런 모습이다.
아무래도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말을 걸면 웃으며 일본인 특유의 톤으로 친절하게 받아준다.
기모노를 입고 까미노를 처음으로 완주한 여성이 되기를..
한글이 반갑네.
도로를 따라 난 길을 걷고 있는데 저 앞에 잉글리시 티쳐 헤럴드가 보였다.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난 거지?
전날 아스트로가에서 머물렀단다.
'알베르게에서 못 봤는데..' 했더니
많이 지친 헤럴드는 휴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좋은 호텔에서 묵으며 피로를 풀었다며
마치 고해성사하듯 사과 투로 말했다.
뭐 죄지은 것도 아닌데..
80이 넘은 연세에 젊은이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매일 걷는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텐데..
오히려 중간중간 호텔에서 피로를 풀어가며 걷는 게 안심이 되겠다.
그러면서도 내 영어가 틀릴 때마다 지적질이다.
헤럴드와 얘기를 할 때면 이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내 이름 때문이다(핑계도 참 가지가지).
어릴 적엔 이름이 둘이었다.
'상한'과 '장한'
가족과 친인척 간엔 거의 '장한'으로 통했었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열에 열은 모두 '장한'을 택할 텐데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상한'으로 굳어졌다.
아버지께서 증권회사에 다니셨다.
'상한' 이라니..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이름이 불리어지는 순간 마음이 상한다.
이름이 '상한가' 가 아닌 이상, 내 인생은 '상한가' 인생이 아니라 '상한'인생이다.
어감도 가볍고 이름에서 고약한 냄새도 풍기는 것 같다.
그나마 성이 '이'씨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데
그건 하나만 모르고 둘은 모르는 얘기.
김. 상. 한.
성까지 갖다 붙이는 순간 내 이름은 동사 '김새다'와 비슷한 '김상하다'의 형용사격인 '김상한'이 되고 만다.
'이상한'은 좋은 쪽으로 이상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좋은 쪽으로 '김새'거나 '김상할' 수는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처음 배울 무렵,
영어 선생님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말투로 그러셨다.
"뭐가 상했어?"
그 후로 영어가 싫어졌다.
아이 헤이트 잉글리시 티쳐!
이름을 '장한'으로 했으면 '김장한'으로 김치사업을 하면서 장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영어도 잘해서 헤럴드에게 지적질도 안 당하고.
그래도 뤼노가 거의 정확하게 '상한'이라고 불러주니 좋았었다.
잉글리시 티쳐 헤럴드가 불러주는 '상한'도 좋았으며
많은 이들이 안 되는 발음을 어렵게 해가며 '상한'이라고 부르려고 했던 게 좋았다.
생한,핫산,산후안,한.. 결국 모두 '상한'일 텐데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랑 잘 어울린다.
작은 마을이 나오고.. 헤럴드는 포도주가 필요하다며 바에 들어갔다.
나는 그냥 바르를 지나쳐 마을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곧 안토넬라가 도착했다.
함께 쉴 때면 항상 간식을 나누었다.
안토넬라는 주로 치즈를 주었고 나는 삶은 달걀이나 과일을 주었다.
덕분에 치즈에 맛을 들였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길 건너로 까미노는 계속된다.
그런데 길 건너 들판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방목되어 있었다.
순간 얼음!
오도 가도 못하고 있으니 개 주인이 괜찮다며 건너오라는 손짓을 했지만 갈 수가 없었다.
주인이 개를 곁으로 불러놓은 뒤에서야 조심조심 지나갔다.
오늘 헤럴드는 이곳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머물 것이라고.
나는 다음 마을인 폰세바돈까지 가기로 했다.
이별을 앞두고 헤럴드가 비밀이라도 되는 듯 두 가지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첫째는,
자신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비결은.. 바로 '젊은 아내'라고.
무려 23살 차이!
날강도 같으니라고.
두 번째는,
'다이아먼드 오브 까미노'
다이아먼드라길래, 까미노에서 중요한 포인트나 기념비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슴 스테이크' 란다.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오 세브레이로에 가면 맛볼 수 있는데
멋진 옷을 입고 서빙하는 종업원들과 그 맛이 가히 '까미노의 다이아먼드'라 불릴만하다며 기억하여두란다.
먹게 될지는 모르지만 기억해둘게.
이제 잉글리시 티쳐 날강도 헤럴드와도 이별이다.
이별의 토마토를 나누었다.
서로를 안아주고
"살루트, 아스따 루에고-"
헤럴드와 헤어져 폰세바돈가는 길은 느긋한 오르막 길이다.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 게 재미있다.
완만한 산아래로 지나온 풍경이 아스라하고,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송전탑이 많은 게 흠이라면 흠.
아무도 없는, 키 작은 풀과 나무들이 펼쳐진 편한 산길.
가을날의 행복한 산행을 잠시라도 놓칠까 가다, 서다, 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진정한 휴식을 맛보았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헨델의 라르고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가끔 듣던 몇 개 안 되는 클래식 중의 하나인데 풍경과 환상의 조합이다.
'이런 걸 누려보기 위해 온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간식을 먹었다.
비스킷을 먹다 보니.. 어느새 손톱이 많이 자랐네.
손톱을 깎을 만큼 긴 여행을 해본 적이 있었나..
집 떠난 지 벌써 손톱 깎을 만큼 되었다.
'틱.. 틱..' 손톱깍기 참 좋은 날이다.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타이머를 맞춰서 셀카 한방.
폰세바돈은 철십자가 탑 바로 아래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산동네 분위기.
인적도 없고 가게도 없고 쓰레기통 주위에 고양이들만 어슬렁거렸다.
우리나라 산장 느낌의 알베르게에 주인도 꼭 산장지기처럼 생겼다.
벽난로의 모닥불이 따뜻했다.
벽난로 주위의 사진들로 보아 주인은 불교와 명상에 심취한 듯하다.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 또한 명상음악들이다.
아는 사람이 있으려나 했는데 안토넬라가 먼저 와 있다.
잠시 후 베지타 프란시스코가 들어왔다.
"올라, 깨딸?"
프란시스코의 배낭이 부쩍 홀쭉해졌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아스토르가에 기부해 버렸다고.
저녁으로는 빠에야를 먹었다.
먼저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긴 샐러드를 덜어먹고
다음에 새우와 홍합이 들어간 빠에야가 나왔다.
여기 산장지기가 만든 빠에야는 맛있다.
해물 볶음밥 비슷하다.
포도주도 한잔.
후식으로 나온 직접 만들었다는 요거트는 달콤하지 않고 시큼털털했다.
프란시스코는 오늘도 견과류.
'저래 가지고 어디 에네르기파 쏘겠어..'
어제 아스토르가에서도 숙소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던 프랑스인 필립.
여기서도 노트북을 끼고 있었는데 업무를 본다고 했다.
낮엔 걷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일을 한다.
내 이름이 어렵다면서도 자꾸 따라 해 보다가
뜻이 뭐냐며 궁금해한다.
'해 뜨는 나라'라고 설명해줬더니 '덕분에 우기임에도 비가 오지 않네..' 라며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뜻만 아니라 불리기에도 좋은 이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 나의 침대는 히터 바로 옆이다.
밀린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D와 O는 오지 않았고 그 후로도 만나지 못했다.
가장 많은 신세를 졌던 D.
애써 가져온 비오킬을, 그것도 한통 통째로 주었고,
나로부터 옮았을지도 모를 베드벅에 대해서는 내가 미안해할까 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스토르가에서는 저녁과 아침까지 푸짐하게 나눠주었다.
그러고 보니 먹튀네.
대신 나도 한국사람을 만나면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