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꼬의 보까디요

오세브레이로 - 사모스

by 외투



옥타비오가 먼저 작별인사를 하고 생장을 향해 떠났다.

어제 남은 빵을 노리꼬가 잘라 구워 버터를 발라 먹었다.

모두 마을의 교회에 들렀다 출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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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이 성가가 흐르는 고요한 아침의 교회.

성인 중의 한 명인 성 프란시스코가 머물렀던 교회라고, 프란시스코가 설명해주었다.

"지금 여기도 프란시스코가 있네"

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좋아한다.

프란시스코는 전에 끝내지 못한 까미노를 이번에 완주해서 완주 증명서를 받겠다고 한다.

교회 안에 세계 각국의 성경책이 놓여 있었는데 한국어판도 있다.

산티아고상이 귀엽다.

아늑하고 예쁜 교회, 그러나 마치 민속촌의 전통의상차림처럼 수도사 복장을 갖춘 짝퉁 수도사 교회지기는 조금 안 어울렸다.

기도하는 프란시스코와 노리꼬를 뒤로하고(까를로스는 그냥 나처럼 구경하는 구경꾼) 먼저 교회를 빠져나왔다.


타냐가 막 오 세브레이로에 도착한다.

전날 어디서 묵었기에 이른 아침인 지금 이곳에 도착한 건지..

러시아 아가씨 타냐는 아스토르가부터 계속 마주쳤는데 언제나 당당하게 혼자였다.

교회로 향하는 타냐와 인사를 나누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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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는 풍경이 싱그럽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내리막을 걷고 있는데 길옆 숲 속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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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슴 한 마리.

달아날세라 꼼짝 않고 얼음!

헤럴드의 말대로 사슴 스테이크가 까미노의 다이아먼드라면.. 이 녀석이 바로 원석일세.

녀석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가만히 주시했다.

가만가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저걸 가공해서 다이아먼드로 만든다고?

원석이 더 예쁘잖아!

오 세브레이로의 사슴 스테이크가 유명한 것은 이 녀석과 연관이 있나 보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민폐를 끼치는 노루를 야생 유해동물로 지정한 제주도처럼 오 세브레이로의 사슴 스테이크도 그런 연유에서 아직까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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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과 헤어지고 길을 내려왔다.

화살표도 안 보이고.. 무작정 내려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산을 깎아 만든 임도 같았는데 다 내려오니 커다란 순례자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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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도착한 타냐가 보였다.

바람에 맞서 모자를 움켜쥐고 있는 순례자상과 그 아래 가만히 앉아 책자를 보고 있는 타냐의 평온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순례자상이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비바람은 내게 맡겨!'

든든한 순례자상 아래 타냐는 평화롭다.


저 아래로 노리꼬가 보였다. 까를로스도 보이고.

분명 내가 먼저 출발했는데.. 또 돌아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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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잘 정비되어있고 화살표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까미노에서 벗어난다.

화살표를 잃어버려 길을 느라 시간과 체력을 낭비해서 힘이 빠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다이아먼드원석을 볼 수 있었으니 조금 돌아왔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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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스는 한 손에 목도리를 들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 것이었는데 그녀는 강도를 만났다고 했다.

아직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강도라니.. 그런 얘기를 여행기를 통해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당한 사람을 만나니 조금 충격이었다.

좋은 사람, 아름다운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스페인 사람인 노리꼬가 괜히 미안해한다.

놀란 아주머니에게 목도리를 건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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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목초지에 평화로워 보이는 가축들.

멀리서 보기에 한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다가가서 부대끼고 겪어보면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동경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곳을 외면하며 떠나고 싶어 하는데, 저곳에 가면 안 그럴까.

완만한 경사를 따라 산을 조금씩 내려간다.

잠시 쉬는데 코넬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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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가만가만 말하는 모습이 공부 좀 하게 생겼다.

스위스 사람 치고는 스포츠를 안 좋아하는 편이고 걷기, 독서,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코넬.

몇 번 숙소에서 만나 인사도 나누고 얘기도 나누었었는데,

음식을 나누려 하면 그때마다 한사코 거절해 내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나처럼 괜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성의를 생각해 받지 않는다.

문화의 차이인 줄 알면서도 섭섭했다.

사무엘처럼 스위스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피스테라까지 갈지는 산티아고에 도착한 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나의 마음은 피스테라는 물론 포루투갈길을 향해 점점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또.. 포루투갈길을 동경한다.


잠시 함께 걷다 보니 노리꼬가 풍경을 감상하며 쉬고 있었다.

코넬은 계속 걸었고 나는 노리꼬 옆에 앉았다.

간식을 나누었는데 노리꼬는 내 성의를 생각하는 건지 굳이 좋아하지 않는 눈친데도 내가 주면 받아먹었다.

그리고 초콜릿을 나눠준다.

아담한 체구에 사뿐사뿐 잘도 걷는다.

우리로 치면 공무원이었는데 2주간의 휴가를 내어 걷고 있단다.

참 휴가가 길어 좋겠다.

우리는 겨우 일주일 안팎의 휴가를 얻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부럽다.

노리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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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 풍경도 좋았고 햇살도 좋았고..

산을 내려오면서 배가 고파 가게를 찾아보았으나 이런 곳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 리 없다.

바르와 식당이 있었지만 뒤에 오고 있을 까를로스가 생각나서 빵만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 팔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분명 어제 숙박비도 노리꼬가 대신 내주었을 텐데,

배낭이 무거워 뒤쳐지는 까를로스가 혹시 보일까 해서 잠시 기다려보았지만 나타날 생각을 안 한다.

더 걷다가 쉼터가 나와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제 산은 거의 다 내려온 듯했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발에 바람을 쏘여주었다.

물집은 모두 굳은살로 변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다만 발바닥이, 발바닥이 조금 아팠고 어깨는 조금 더 아팠다.

발톱이 많이 자라 있었다.

발톱을 깎았다.

발톱깍기 좋은 날.

발톱을 깎을 만큼의 긴 여행은 정말 처음이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손톱과 발톱을 똑같이 깎았었는데.. 발톱이 더 늦게 자란다.

평소에도 손톱이 더 빨리 자라는데, 이유가 뭐지?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일들이, 까미노라 그런지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별게 다 궁금해진다.



보까디요 데 노리꼬


프란시스코가 프럼 러시아 타냐와 함께 지나간다.

까를로스를 보았느냐고 물으니 못 보았다고 했다.

"아스따 루에고(이따 봐)"

비스킷을 꺼내 먹었다. 발톱 깎던 손을 씻지도 않고..

잠시 후 지친 모습의 까를로스가 나타났다.

"올라, 깨 딸?" 했더니, 이 녀석 힘든 표정이 역력한데도 습관적으로 "부엔부엔" 해버린다.

얼굴은 전혀 '부엔부엔'이 아닌데 입으로만 '부엔부엔'.

니 상태 내가 다 안다.

빵조각이며 남은 과일이며를 꺼내 허기를 채웠다.

까를로스도 배낭을 뒤지더니 꼬깃꼬깃한 종이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엔 보까디요가 들어있었다.

어제 점심에 노리꼬가 만들어 주었던 보까디요다.

바로 먹지 않고 손에 들고는 '보까디요 데 노리꼬..'라고 가만히 탄식처럼 읊조리는데,

여지껏 들어본 어떠한 '식사에 대한 감사기도'보다 더 절절한 기도로 들렸다.

그리움과 감사 같은 것들이 뚝뚝 떨어진다.

가만가만 씹어먹는 까를로스.

한입한입 노리꼬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를 꼭꼭 씹는 모습이 조금 애처로워 보였다.

만든 지 하루 지난 차가운 보까디요를 참 따뜻하게, 그러나 목을 매어가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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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스가 '보까디요 데 노리꼬'를 다 먹고.. 잠시 쉬었다가 출발.

까를로스와 함께 걸었다.

우리는 사모스까지 가기로 했다.

아니, 사모스까지 가야만 한다. 까를로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곳에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가 있기 때문이다.

기부제가 아니더라도 까를로스는 사모스로 갔을 것이다.

그곳에 노리꼬가 있을 테니.

그녀는 오늘 사모스까지 간다고 했었다.

나도 걸음이 느렸지만 까를로스 때문에 더 늦어진다.


사모스 가기 전 트리아까스떼야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한 건물의 2층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필립이다.

오늘 그는 이곳에서 머문다고 했다. 아마 노트북을 펴놓고 작업을 할 테지.

'내 이름 덕 잘 보고 있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작은 바르에 들어갔다. 너무 배가 고파.

까를로스에게 보까디요를 먹겠냐고 했더니 커피만 마시겠단다.

오믈렛이 들어간 보까디요와 까페콘 레체 두 잔을 주문했다.

오믈렛은 프랑스 스타일로 주문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토스트에 들어가는 계란부침과 비슷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보까디요.

칼을 달라고 해서 반을 잘라 주었더니 까를로스가 잘 먹는다.

설탕을 더 달라고 해서 오믈렛 위에 설탕을 뿌려 먹었다.

한국식 토스트 마냥.

 까를로스가 별걸 다 쳐 먹는다는 듯 '오스 띠야!-'하고 놀란다.

비록 토스트였지만 간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 같았다.

옆 테이블의 마을 아주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부엔 뿌로베초-"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보까디요를 먹으며 TV를 보던 까를로스가 또다시'오스 띠야!'를 날렸다.

언뜻 낯익은 얼굴이 TV에 나오고 있다.

어제 보았던 오 세브레이로의 호스피딸레라 아줌마.

그런데 그 아줌마가 눈보라 속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오 세브레이로에 폭설이 내린 것이다.

하루새에 가을에서 한겨울로 점프를 한 것일까.

눈 속에 파묻힌 오 세브레이로..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그때 '툭'하고 떠오른 얼굴. '사요꼬'

기모노에 손수레를 끌고서 폭설의 오 세브레이로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려나.

하루 차이로 폭설을 피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스페인에서의 겨울을 놓친 것만 같아 아쉽다.

충분히 먹고 휴식을 취하고 서둘러 사모스로 향했다.

이곳에서 사리아와 사모스로 가는 길이 나뉜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까미노는 도로 옆을 따라 한참을 이어지다가 숲길로 접어들어간다.

도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서니 한결 상쾌했지만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마음이 편했다.

편했고.. 또 시원하고 상쾌하고... 이런 게 진짜 숲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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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단다.

원래 계획은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길을 완주한 뒤 북쪽 길로 해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자전거가 고장나면서 그만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담배를 말아 피우며 한숨을 쉬듯 연기를 내뿜는다.

나도 공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까미노를 시작했기에 까를로스와는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무일푼으로 까미노를 걷고 있는 까를로스의 심정을 어찌 이해할 수가 있을까.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것과 땡전 한 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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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같은 초승달이 떴다.

오늘은 꽤 많이 걷는 것 같다.

가로등 없는 숲 속이라 날이 금방 어두워져 까를로스가 렌턴을 꺼냈다.

나도 헤드랜턴을 꺼내 머리에 썼다.

이럴 때 헤드랜턴은 정말 유용하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까미노 데 노체, 야간 까미노.

길을 찾아서, 화살표를 찾아서 캄캄한 숲길을 더듬었다.

손에 닿을 듯 보이는 사모스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불빛이 보여 서둘러 가보면 작은 마을이고 다시 멀리 불빛이 보이고.. 를 반복했다.

사모스에 이르는 길의 막바지는 산길이다.

까를로스가 많이 지쳤다.

하지만 조금만 가면 알레르게가, 그리고 노리꼬가 있다.

내리막이 거의 끝날 무렵 가로등이 나타났다.

드디어 사모스다.


마을로 접어들자마자 나타나는 첫 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일요일인 오늘 문이 열렸다는 것에 감사하며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놓여있는 낯익은 배낭.

들어가 보니 프란시스코가 있었다.

막 도착했는지 저녁거리를 사고 있었다.

프란시스코가 까를로스것까지 넉넉하게 샀다.

문어 통조림이 있길래 하나 집어 들었더니 까를로스가 '하나로는 부족할 텐데..' 한다.

그렇지만 맛도 모르고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하나만 샀다.


사모스의 알베르게는 수도원의 일부를 숙소로 내어준 것이다.

특이하게 건물의 한 쪽을 작은 주유소가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 알베르게가 있다.

들어가니 노리꼬가 오래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반겨준다.

"올라? 깨 딸?"

그제야 까를로스의 얼굴이 펴졌다.

"부엔부엔"

까를로스의 얼굴이 보기에도 정말 '부엔부엔'해졌다.

알베르게에는 프럼 러시아 타냐와 또 다른 커플 한쌍과 우리 넷이 전부다.

이곳은 난방은 물론 온수도 없다.

추운 건 옷을 껴입으면 되고 온수가 나오지 않으면.. 씻지 않으면 그만인데

부엌도, 식당도 없다. 큰일인데..

기부함만 덜렁 탁자 위에 놓여있고 관리자도 없다.

숙박자 명부도 직접 적어야 했다.

조금 꾀죄죄한 침대에 짐을 풀어놓았다. 물론 벌레가 있나 없나 꼼꼼히 살펴본 후에.

베드벅에 물린 상처는 많이 가라앉았다.

얼마나 감사한지 물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노리꼬가 잠시 후에 미사가 있다고 했고,

곧 수도사(오 세브레이로의 짝퉁 수도사와는 다른 진짜 수도사) 한분이 와서 스탬프를 찍어주고 인솔해가는데, 숙소 안쪽의 세면실 겸 화장실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 한참을 이동해서야 2층의 예배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 '다빈치 코드'와 비슷한 코드의 분위기.

예배실은 좀 작았다.

작지만 경건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며 분위기였다.

미사는 대부분이 성가로 진행되었다. (이게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건가?)

우리가 앉은 의자 정면으로 신부님(이라고 해야 하나?)이 미사를 인도하고 좌우로 수도사(후드가 달린 망토 비슷한 복장의)들이 서로 마주 보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정성스럽게 노래를 부르는데, 그 분위기와 소리가 묘한 울림을 주었다.

키가 큰 수도사, 작은 수도사, 뚱뚱한 수도사, 마른 수도사, 여자로 보이는 수도사..

언뜻 보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조합이었고, 진지하고 경건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일상화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양한 외모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과 울림을 만들었다.

뚱뚱한 신부님이 감기에 걸렸는지 가끔 큰소리로 코를 풀어댔지만 그럼에도 경건하면서도 평안한 경험이었다.

물론 미사의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스페인 사람인 프란시스코와 노리꼬도 그런 것 같았다.

미사의 여운을 품고 다시 수도사에게 이끌려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민생고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미사에 빠져 잠시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밀려왔다.

'그냥 차가운 행동식으로 때워야 하나..' 생각하며 일단 배낭에서 먹을 것들을 꺼냈다.

까를로스도 배낭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스버너를 꺼내 탁자 위에 턱 하니 올려놓는다.

그리고.. 퐈이아!!

작은 온기를 숙소에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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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베지터리안 프란시스코가 구입한 '에네르기'를 위한 고기가 들어있는 빵을 먹고(프란시스코 또 육식이네)

차를 끓이고 뿔뽀(문어)통조림을 코펠에 담아 데웠다.

'이래도 괜찮은 거야?' 하면서도 다들 즐거워했다.

수학여행 와서 선생님 몰래 '금지된 장난'을 하는 그런 재미.

까를로스의 우려대로 문어 통조림 한 개로는 어림도 없었다.

짭짤하고 부드러운 게 아주 맛있다.

아껴서 나눠먹고 아주 달달한 빵과 바나나 등으로 배를 채웠다.

막판에 어둠 속을 긴장하며 걸어서 그랬는지 조금 피곤했다.

날도 차가웠고 온수도 나오지 않아 샤워는 포기하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온수가 나온댔어도 샤워는 하지 않았을 걸.

내가 언제부터 매일 샤워를 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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