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베이로아 - 무시아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끓여 눌은밥인지 죽인지를 먹었다.
짭짤한 초리소를 곁들여 먹으니 아침으로 괜찮다.
프란시스코가 눌은밥을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보길래
"이거 100% 채식이야"
"그래? 그럼 한번 먹어볼까.."
한수저 떠서 입에 넣어본다.
내심 부드럽고 구수한 게 오트밀과도 비슷해서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영 입맛에 맞지 않나 보다.
거의 '노코멘트'수준의 반응이었다.
참치라도 넣어줄걸 그랬나 보다.
B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했다.
대개 피스테라나 무시아에서 일정을 마치면 싼티아고는 버스로 돌아가는데
이곳 올베이라에서 머문 것을 보니 B는 다시 걸어서 돌아가고 있나 보다.
참 대단하다.
종착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까미노 걷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나부터도 싼티아고로 돌아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B가 무사히 여행을 마치길..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싸서 우리도 알베르게를 나섰다.
계획은 수시로 변했다.
B의 말을 듣고 무시아를 마지막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프란시스코가 피스테라를 마지막으로 가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말에 나의 얇은 귀가 팔랑거렸다.
하긴 피스테라가 먼저면 어떻고 무시아가 먼저면 어떠랴.
사무엘도 그렇게 하자고 해서 오늘의 목적지는 무시아로 정했다.
크리스마스가 20여 일 남았는데 벌써부터 집집마다 산타클로스가 매달려 고생을 하고 있다.
12월이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피스테라와 무시아로 갈라지기 전의 바르에 들어가 까페 꼰 레체 한잔.
주인아줌마는 이곳이 마지막 바르이니 먹을 것을 더 사가라고 했지만 우리는 보까디오를 싸놓았기에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
바르를 나와 완만한 오르막길을 좀 더 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가면 피스테라, 오른쪽으로 가면 무시아.
우리는 우회전.
싼티아고를 지나서부터는 매일 비가 내렸는데 오늘도 많은 비가 내렸다.
우리의 농담도 '오우~ 쏘 헤비 레인'에서 '갈리시아 메잌스 아틀란티코'로 바뀌었고,
갈리시아가 비를 모두 앗아가 버려 메세타가 만들어졌으며, 유럽의 가뭄을 야기시켰다고 하면서 쏟아지는 비를 즐겼다.
아스팔트 길이라 다행이지 맨땅이었으면 진흙범벅이었겠다.
허름한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차를 마셨다.
사무엘은 맥주를 마셨다.
어제 마시고 남은 맥주캔을 배낭에 넣어왔다.
스위스를 출발할 당시 그의 배낭은 내것은 명함도 못 내밀만큼 무거웠단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버리다 보니 지금의 아주 홀쭉한 배낭이 되었단다.
그러니 맥주캔 몇 개 정도는 아무 부담도 되지 않았다.
산토 도밍고에서도 모두가 주저하던 밥을 재빨리 챙겨 넣었었지.
한국의 시골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보니 비 오는 풍경이 아주 그만이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정류장에 앉아 빗속에 안겨 있자니 포근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했다.
잠시 더 앉았다가 빗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폭우 속을 걷는다는 건 정말 신나는 놀이다.
내심 '바다를 본다'는 기대에 바람소리가 파도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파도소리로 기대를 하고 언덕을 넘으면 다시 또 언덕이 이어졌다.
소리뿐만 아니라 괜히 바다내음까지 풍기는 것 같았다.
"음 스멜~ 바다 냄새 같지?" 하면서 킁킁 거리기도 해본다.
사무엘은 대서양에서 수영을 할 것이라며 수영복도 가져왔단다.
'저스트 펀, 저스트 펀' 하면서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고 했지만 들뜬 표정을 감출 수는 없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를 출발해 자그마치 2,000km를 걷는 여행의 종착지에서 '입수'를 하는 이유가 단지 '재미 삼아'는 아닐 것.
점심은 비를 피해 한 농가의 축사로 들어가 먹었다.
아침에 싸 두었던 보까디오와 함께 나는 따뜻한 차를, 사무엘은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몇 개의 작은 언덕과 고개를 넘었을 때
다시 조금씩 파도 소리도 들리고 바닷 내음도 풍기는 것 같았다.
이윽고 수풀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드디어 아틀란티코가 보인다.
대서양이다.
여기, 이것이 아틀란티코, 대서양인가?
아니, 대서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육지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걷고 걸어서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을 가로질러 땅끝까지 왔다는데 살짝 벅찼다.
다 같은 바다일 텐데 이곳의 바다는 그렇게 짠내를 풍기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짙게 풍기는 그런 짠내.
비가 와서 그랬나... 아니라면 '물 건너온 바다' 라 그런지 하여간 바다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에 들떠 걷다 보니 그만 화살표를 잃어버렸다.
무시아는 그냥 바닷가를 따라 걸으면 그만이겠거니 하며 걸었는데 길이 끊겼다.
어렵게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장식용 타일처럼 보여 무심코 지나쳤던 길바닥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포장도로가 끝나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더니 작은 오솔길을 따라 까미노가 이어졌다.
금방 닿을 것으로 여겼던 무시아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심한 무시아.
해안가에서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다가 어두워질 무렵 드디어 무시아가 나타났다.
무시아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는
"오우 쏘 매니 라이츠!"
사무엘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도 '오우 쏘 매니..' 하면서 장난을 치다 보니 입에 배어 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모래 언덕을 넘으면서 불빛들이 보였는데 사방이 트인 바닷가의 마을이라 유독 불빛이 많고 화려해 보였다.
7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가니 프란시스코와 타냐, 그리고 바스크인 에두아르네가 있었다.
에두아르네는 네그레이라에서 처음 만났었다.
바스크는 피레네 산맥의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있는 지역이라는데, 아직도 그들만의 전통과 방식을 잃지 않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단다.
조금은 선머슴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마른 듯 날렵한 체구의 에두아르네가 왠지 '바스크'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나와 사무엘은 그녀를 '바스크 워먼'이라고 불렀다.
스탬프를 받고 증서를 받았다.
프란시스코는 돌돌 말아 통에 넣었고 나는 무시아의 증서도 깨끗하게 반으로 접어 넣었다.
증서를 건네주면서 호스피탈레로가 내일 피스테라 갈 때의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곳 무시아에서 스탬프만 받고 피스테라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시아와 피스테라 중간지점에 위치한 바르에서 스탬프를 받거나 지정위치의 해변에서 사진을 찍어 확인받아야만 피스테라에서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바르에서 스탬프를 받거나 인증사진을 찍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란다.
에두아르네는 알베르게에 남겠다고 했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매일 해 먹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이라 모두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해변가에 늘어선 여러 식당 중에서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JARDIN'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정원'이다.
말 그대로 가든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식당은 아니었다.
프란시스코가 주인에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닭고기가 먹고 싶었지만 여기는 바닷가이니 해산물이 좋다고 해서 모두 같은 메뉴를 선택했다. 생선요리.
오늘도 베지터리언 프란시스코는 생선을 먹는다. 에네르기를 위해.
대구인 듯 싶은 큰 생선요리였는데 정말 맛도 좋고 신선해서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곁들여 화이트 와인도 한잔.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그냥 수퍼마켓에서 파는 뚜껑 열고 먹는 아이스크림이다.
프란시스코는 후식으로 바나나를 주문했는데 바나나 하나가 덜렁 접시에 놓여 나왔다.
'이게 뭐야?' 하는 표정을 짓더니 먹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는다.
TV에서는 데이비스컵 테니스대회에서 나달을 앞세운 스페인이 우승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프란시스코가 "며칠 동안 저 얘기만 계속 나오겠네."라고 말은 시큰둥하게 하면서도 은근히 자국 우승 소식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러시아에서는 거의 TV를 보지 않았다던 타냐가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는데,
마치 TV를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나도 알아듣도 못하는 TV를 한참 동안 구경했다.
TV본지도 오래되었구나.
시골에서는 물론이고 도시에도 오래된 건물이 워낙에 많은 스페인이라 미처 생각지 못한 게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세련된 TV 방송화면이었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중계는 말할 것도 없었고 중간에 나오는 광고도 우리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스페인도 유럽이었다.
전통문화는 문화대로, 첨단기술은 또 그것대로 유럽스러웠다.
우리는 밥값으로 10유로 정도씩을 각출해서 프란시스코에게 계산하라고 주고 TV가 있는 정원에서 나왔다.
프란시스코와 타냐는 바닷가에 있는 교회를 둘러보겠다고 했고..
나와 사무엘은 숙소를 향해 뛰어야 했다.
숙소의 문이 10시면 닫힌다고 했는데 거의 10시가 다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다해 뛰었는데 겨우 2분 차이로 알베르게의 문이 잠겨 버렸다.
알베르게는 현대식 건물이었고 어디 담 넘을만한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숙소 2층을 향해 큰소리로 에두아르네를 불렀다.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어서 작은 돌을 주워 창문에 던지기 시작했고
몇 번 돌멩이가 창문에 부딪힌 다음 그제서야 바스크 워먼 에두아르네가 나왔다.
그녀가 없었으면 정말 노숙자 신세가 될 뻔했다.
잠시 후 프란시스코와 타냐가 들어온다.
달빛 아래 바닷가의 아름다운 교회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날이 너무 흐려 달도 볼 수 없었고 어두워서 별로였다고..
프란시스코가 동전 한 닢까지 계산해서 아까 나누지 못한 거스름돈을 돌려준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2층으로 옮겨 정리를 하고 잠시 쉬다가
사무엘이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치즈봉다리를 꺼내 보이며 퐁듀를 해 먹자고 한다.
갈리시아 특산 빵을 조각조각 깍둑 썰고.. 냄비에 치즈를 넣고 데웠다.
그런데 냄새가 어째 고약하다.
사무엘 표현으로는 '스멜 라이크 쉣'.
나는 권유에 못 이겨, 그리고 호기심에 빵조각 하나를 찍어 맛을 보았는데 아주 짰다.
사무엘은 고향의 맛이 그리웠는지 치즈에 빵을 담갔다가 호호 불면서 잘도 먹었다.
프란시스코는 이럴 때만 베지터리언이라 치즈를 안 먹는다면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
잠시 사무엘이 음식 테러리스트란 걸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한 치즈를 이용해 퐁듀 폭탄을 제조했다.
결국 내가 샤워하는 내내 사무엘은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테러리스트의 처참한 말로다.
설마 그 퐁듀용 치즈를 스위스부터 가져온 것은 아니었을 테지..
꽤 큰 규모의 알베르게에 5명밖에 없으니 조금은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침에 내 생각대로 피스테라로 향했다면 요한과 베아, 그리고 죠셉과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아에서 일정을 마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입구 한쪽에 할 일을 마친 지팡이들이 잔뜩 놓여 있었고
내일 피스테라가 남아 있지만 어째 길이 끝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