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O26

제 3-3장 나 : 모르는 건 모른다는 것이다.

by 올드한



내가 깨어나 있음을 침대 중간에서 뛰고 있는 그 존재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살며시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침대의 요동에 맞춰, 그 직원의 몸이 들썩이는 것이 실눈을 뜬 내 눈의 모서리에 들어왔다.

그가 먼저 깨어 나를 봤다면, 내 몸도 분명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 이 와중에 어찌 코를 정숙하게 골 수 있단 말인가.


요동이 갑작스레 멈췄다.

몸을 반쯤 튼 채로 눈을 꽤 크게 뜨고 있는 나를 자각하는 찰나였다.


잠시 동안의 정적.

만약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라면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의 저 쪽 끝에 누워 있는 그 직원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침대의 중간으로 돌아올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파르르르륵’


뭔가가 급히 움직이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배 위로 그것이 올라왔다.

상당한 무게였다. 복근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내장이 터질 듯한 70kg 정도.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어둠 속에 좀 더 검은 실루엣이 형태를 서서히 갖추어 가는 것을.

실루엣은 끝내 사람의 모양이 되었고 푸른빛의 핀조명이 그것을 비췄다.

무엇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지 알고 죽으라는 듯이.


크기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 정도.

머리 뒤로 길게 늘어뜨린 흰 모자.

그 안감은 붉은색.

살아 있다는 느낌이 너무 분명해서

오히려 견디기 힘든 얼굴.

각오가 서린 표정. 무엇인가를 벌하러 온 얼굴.

시선은 내 쪽이 아니었다.

정면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유독 이상한 건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는 두 팔.


그 팔을 타고, 차갑고도 어두운 기운이 내 볼 쪽으로 흘러내렸다.

체온을 앗아가는 냉기에 몸서리가 쳐졌다.

차갑고 어둡고 고독한 땅 속 구멍 깊은 곳에서 가져온 축축한 냉기였다.

수백 년 묵은 곰팡이 냄새도 났다.



완성도와 진실성이 떨어지는 무수한 귀신이야기를 접해 오면서, 어떤 부분이 착각이고 어떤 부분이 환각이며 어떤 부분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가려낼 수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그런 류의 상황이 아니다.

사진으로 찍으면 찍힐 내 상황 그대로다.


머릿속에 있는 갖가지 종류의 악한 존재들과 매칭을 시켜보았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히 이모저모 뜯어봐도 모를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온 것의 원류나 변종 비슷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인 것이다.

무엇이건 이 호텔의 터나 건물과 사연이 얽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붙들려 있는 저주받은 존재일 테다.

그리고 알고 있는 또 한 가지.

무수한 귀신 얘기들이 얼마만큼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얘기 속 공통된 한 가지 상황은 누군가는 사단이 난다는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눈을 떠 보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기를 기대하며.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컴퓨터를 한 번 껐다 켜면 어지간한 먹통은 싹 해결되니까.

다 고쳐가는 컴퓨터나 완성을 향해가는 원고를 포기할 때 보다 백만 배의 비장함으로 감은 눈이었다.


이 한 번의 눈 감음으로 나는 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얼마간의 시간 말미( 컴퓨터가 리부팅을 마치는 시간 정도)를 둔 다음 다시 눈을 떴으나 상황은 변한 것 없이 완전히 똑같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배 위로 올라온 그 존재로 인해 숨쉬기가 조금 더 힘들어졌다는 것.


이제 주위의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방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침대 중간에서 뛰기를 멈추고 내 배위로 올라와 정지하자 방안은 정적 속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뻗은 손으로 클라리넷 독주를 위해 오케스트라와 관중들의 모든 소리를 잠시 멈춘 지휘자의 지휘를 따르기라도 했는지.


그 직원도 이제 코골이를 멈추고 축 늘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죽었나?

내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내 영혼의 발은 버둥거리며 이불을 박차고 있었지만 횡경막이 눌려 산소가 차단된 육체의 생기는 분명 잦아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아마 먼저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죽는 타이밍으로는 그리 적합하지는 않다.



이사람아. 제발 이쪽을 좀 봐줘. 공포스럽겠지만. 물병이나 베개나 내가 맞아도 되니 재떨이라도 좋으니 좀 이쪽으로 던져봐.

다 못하겠다면 코라도 다시 골아봐.

비겁하게 죽은 척하고 있지 말고. 당신도 반드시 곧 들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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