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가 빨래하는 날

다정한 물리학

by 오래된 도서관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 집 5분 거리 안에 친가들이 모여 살았다. 그 덕에 다섯 살 무렵의 나는 그 나이 때의 특권을 톡톡히 누리며 살았던 것 같다.

바로 찻길 하나 건너면 나오는 고모네집을 꽤나 자주 들락거리면서 도넛을 축내는 것이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고모부 덕에 80년대 초에 이름도 낯선 도넛은 온 시장을 다 다녀도 없지만, 고모네 가면 있었다.

그렇게 간식에 현혹되어 출근도장을 찍던 날들 중 어느 겨울 낮, 창 밖으로 보이는 고모네집 마당에 흰 눈이 흐려져 어두워진 하늘을 가득 채우며 쌓여가는 모습을 서서 내다보고 있었다.

다섯 살짜리의 눈에도 그날의 함박눈은 손에 든 도넛보다 유혹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박눈이 내리던 고모네 마당이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눈이 오는 날은 거지가 빨래하는 날 이래.”

고모가 눈 오는 창 옆으로 와서 서며 이야기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모는 다섯 살 조카의 긴 침묵을

‘옷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가 이 추운 겨울에 빨래를 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이해하고 다음 말을 마저 하신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난

‘거지는 빨래를 하지 않는 사람 아닌가?’

하는 당황스러운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흰 설탕처럼 흰 눈도 단 맛이 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던 다섯 살 아이의 추론인 것을 감안하면 꽤나 개연성을 갖춘 의문이었다. 다행히 얼토당토않은 나의 결론과 고모의 오해의 간극은 지혜로운 고모의 다음 말로 지워졌다.

“눈이 오면 날이 푹해져서, 옷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가 빨래를 할 정도로 따뜻해진다는 말이야.”

날이 푹해진다는 말도, 더러운 옷으로 완성되는 거지가 드레스코드를 어긴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달콤해 보이는 함박눈이 내리는 마당을 내다보며 입 속에 넣은 도넛의 단 맛에 고모의 말소리는 푹한 배경음이 되어 한가로운 간식시간의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저 아래 깔린 묵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 중학교 과학 시간에 다시 꺼내졌다.

구름 속 물방울이 눈이 될 때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데 이것을 응고열, 혹은 잠열이라고 한다는 말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씀에서, 고모네서 흰 설탕 묻은 도넛을 와앙 깨물며 눈 덮여가는 마당을 보던 기억과 고모의 눈 오는 푹한 날에 대한 말들이 서랍이 통째로 쏟아져 나오듯 기억났다.

기억은 가끔 엉뚱한 결합으로 묶인다.

지금까지도 뉴턴의 이론은 흰 눈과 도넛의 쨍한 단맛과 함께, 거지가 강에서 빨래하는 모습과 함께 떠오른다. 백여 년 후 자신의 이론이 도넛과 빨래하는 거지와 결합될 줄은 세기의 천재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의 집단 지성을 이론을 정립하고 증명해 낸 뉴턴 선생님께서도 예측할 수 없었을 테지.

다섯 살 꼬마의 도넛과 빨래하는 거지의 연계는, 세기의 천재를 적잖이 당황하게 조합이지만, 16살 과학수업에 집중하는 후배에게 '잠열'의 개념을 미각과 시각과 스토리텔링으로 각인시킨 공신이다.


깜깜한 밤하늘에도 잘 보일 만큼 큰 눈송이가 어지러이 날리는 것을 보며 거실 창에 서서 저 아파트 바닥을 살핀다. 이제 흰 눈의 맛이 도넛보다는 찬 먼지 맛이라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어 쓰고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머금어본다.

단 맛보다 달게 마시는 쓴 커피를 도넛이라고 치고, 흐르는 강에서 더러워진 옷을 벗어 강물에 적셨다가 꾹 짜는 거지의 모습이 뜬금없이 떠오르며 스르르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섯 살의 모든 기억이 남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한 장면씩은 오래도록 남을 수도 있다.



"눈 오는 날은 거지가 빨래하는 날 이래."



갑작스러운 말에 거실 소파에서 두 손으로 폰을 소중히 붙들고 게임하던 막내가 그 긴박한 순간에도 잠시 손을 쉬며 대답한다.


"응? 엄마? 나한테 하는 말이야?"


40의 예의, 그리고 폰을 빼앗을 수 있는 절대권력에 60의 비중을 두고 경청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리라.

조금 전 머금은 커피의 향이 코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막둥이의 의문이 가득한 눈을 본다.


“눈이 오면 날이 푹해져서, 옷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가 빨래를 할 정도로 따뜻해진다는 말이야.”


눈 내리는 창을 보며 혼잣말처럼 남은 말을 하고는 웃어 보이자, 막내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폰 화면으로 다시 눈과 귀를 던진다.

오래전 다섯 살 꼬마의 입에 든 도넛처럼, 질풍노도의 소년의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임 화면이 엄마의 모든 말을 푹하게 배경음으로 묻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