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인 장화와 홍련
선명한 신분의 선이 있던 조선에서의 여인의 죽음은 통상 내막도 땅에 묻혀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자였던 그녀들에게도 뾰족한 수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행정 제도였다.
사실 억울하게 죽은 자매는 자신을 죽게 한 새어머니나 죽음을 방조했거나 모르고 있는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그 비통함을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만 이 범상치 않은 자매는 해당 관할 원님에게 나타나 민원을 제기한다. 확실히 이런 전개는 다른 나라의 전래동화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다.
그 시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 선에서 만들어지는 전래동화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장화 홍련전>은 '죄지은 놈이 사는 고을의 원님이 단죄를 해야 할 주체'라는 무언의 합의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속지주의’를 따르는 법이 있었던 걸까? 나 같으면 이왕 죽은 마당에 ‘본사(염라대왕)’나 ‘회장님(임금)’을 직접 찾아가 읍소할 법도 한데, 자매는 굳이 ‘지사(고을 사또)’를 찾아간다. 죽은 이조차 상식으로 알고 있는 행정 절차가 명확히 존재했다는 증거 아닐까?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는 호통 만으로 기억하는 조선의 사또가 문득 생각보다 훨씬 피곤하고 촘촘한 매뉴얼에 묶인 행정 실무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읽어 온 전래동화 속 사또들이 탐관오리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실상 그들의 책상 위에는 억울한 죽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야만 하는 조선판 CSI지침서, [무원록]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낯선 무원록은 그 뜻대로 ‘죽은 자에게 단 한 점의 원통함도 남지 않게 하라.’는 법의학 지침서였다. 나라님의 의중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조선은 건국 이래 민본주의를 표방하는 유교의 나라였다. 또한 통치권자의 자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경국대전]과 [무원록]이라는 정교한 법과 매뉴얼로 굴러가는 견고한 관료제 사회였다.
고을에 변사자가 생기면 수령이 직접 현장에 나가 검시 보고서를 작성해 중앙 정부에 올려야 했다. 그러니 원귀가 나타나 고을 수령을 직격 했다는 것은, 오늘로 치면 행정망이 마비될 정도의 대형 민원이 ’ 실 시간 라이브’로 중계된 셈이다. 사또로서는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생사가 걸린 ‘최우선 과제’가 떨어진 것이다. 졸속 행정처리를 한 당사자라면 이런 상황에 심장이 멎을 정도의 충격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현대의 행정 절차를 감안해 봐도, 전임자의 졸속으로 덮어버린 사건은 후임자에게 넘어갈수록 더 깊이 은폐되기 마련이다.
이미 서류상으로는 ‘호랑이 사고사’로 완결된 사건을 다시 들춰 긁어 부스럼을 만들 행정가는 흔치 않다. 결국 장화와 홍련은 침묵으로 공조하는 행정 시스템을 재가동하기 위해, 매번 신임 사또의 집무실을 해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럼 이렇게 추상같은 명문법이 작동하는 견고한 행정국가인 조선에서, 장화와 홍련의 죽음은 어떻게 가짜뉴스로 덮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조선의 양반가라고 해도 ‘그냥 한번 해보기’에는 감수할 위험이 너무 큰데 말이다. 규방의 일을 굳이 들춰내지 않는 관습법을 악용한 계모 허 씨의 간덩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엔 허 씨 자신은 능지처참을 면치 못할 국법의 엄중함을 알면서도, 그녀는 ‘정절’이라는 가짜뉴스가 가진 마비 효과를 확신했다. 국법보다 무서운 것이 세간의 입방아라는 점을 간파한, 그야말로 목숨을 건 ‘올인’이었던 셈이다.
허 씨가 이런 무리수를 둔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조선은 딸에게도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어주던 시대였다. 혼인과 함께 집안의 지분을 뚝 떼어 나갈 딸들을 빈손으로 내쫓고 싶었던 그녀의 욕심은, 결국 국법의 시스템을 속이려는 대담한 '설계'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허 씨 자신은 거열형이라는 참혹한 말로를 맞이했고, 하나뿐인 아들은 강상죄인의 소생이라는 낙인과 함께 연좌제로 묶여 평생 관직 길이 막혀버렸다.
아들에게 '풀 소유'를 안겨주려던 계획이 오히려 가문의 '영구 삭제(Delete)'를 불러온 셈이다. 한 방 잘못 노리면 인생 하드모드 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인가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약자의 목소리가 덮이는 경우가 더 많았겠지만, 장화와 홍련처럼 잔불로 남아 끝내 진실의 큰 불을 지피는 경우가 있다. 달이 차면 기울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이 말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던 조선이었지만, 그 시대의 법은 다른 전근대 사회와 비교하면 확실히 보편적인 절차적 정의가 작동하는 사회였다. 이토록 촘촘한 매뉴얼 공화국을 설계한 정도전은 이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지독한 '파워 J'가 아니었을까? 왕조차 행정 절차를 따르다 과로사하기 십상인 이 치밀한 시스템 속에서, 국법을 기만하려던 시도는 결국 가문 전체의 '영구 삭제'라는 가혹한 본보기를 남겼다.
'물 반 고기 반인 물속에서 나만 낚싯대에 걸리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요행을 바라기에, 조선의 매뉴얼은 생각보다 촘촘했고 그 대가는 너무나 비대칭적으로 컸다. 어쩌면 장화와 홍련이 우리에게 전하는 진짜 공포는 귀신의 형상이 아니라, 시스템을 우습게 여긴 대가가 인생 '하드모드'를 넘어 '강제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서슬 퍼런 법치주의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촘촘한 조선의 매뉴얼보다 더욱 밀도 있는 법 체계를 갖춘 현대에도 장화와 홍련의 출몰은 계속되고 있다. 가짜뉴스와 행정 방관, 그리고 방만한 행정과 그 틈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함께 밀도를 높이는 탓이 아닐까?
억울한 이가 스스로를 던져서 진실을 드러내야 작동하는 사회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결국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공포는 귀신의 형상이 아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아무개의 목숨들이 소모된 뒤에야 겨우 로그 기록을 뒤져보는 시스템의 무표정함이다. 귀신이 관아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데이터가 진실을 말하는 세상, 그것이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꿈꾸는 가장 '상식적인 판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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