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뉴토피아

3.5인치 디스켓 속 예언

by 오래된 도서관

빨강 구두를 신은 X


매일 쓰는 엑셀과 한글 파일의 저장 버튼이 [디스켓]이라는 유물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세대를 나눌 수도 있다. 사촌 오빠네 집에서 8비트 컴퓨터를 본 1980년대 즈음 느낀 뉴 미디어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시작으로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컴퓨터실에서 내 손에 들린 첨단 저장장치 3.5인치 디스켓의 플라스틱 질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께서 필름 부분을 열어 보여주시며 이곳에 지문 남기면 데이터가 날아가니 절대 손대지 말 것을 주의사항으로 알려주셨다. 수 십장의 종이에 쓰인 데이터가 고작 내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디스켓에 저장이 된다는 사실은, 손에 잡히지 않아도 실재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지금 보면 평생 손에서 놓지 못할 도구에 대한 예언서 같지만.

종이를 대체할 것이라던 3.5인치 디스켓의 용량은 1.44MB였다. 어느 정도 용량인지 가늠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단위 자체가 달라져 있으니까. 우리가 손목에 차는 스마트 워치의 용량이 작게는 32GB에서 64GB이다. 32GB 용량을 담으려면 3.5인치 디스켓이 22,756장이 필요하다. 바닥에 한 줄로 쌓으면 25층 건물 높이라고 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강산이 4번 정도 변하는 동안 용량은 얼마나 변한 것일까?

뉴 미디어의 시작과 함께 성장한 X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MZ 세대들이 X세대를 새로운 툴에 적응이 빠르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재미있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들의 말투를 꼬집는 신조어)는 도스 화면에 명령어 입력해서 전원 켜고 입력 장치는 키보드만 있을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 한 세대인데 말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결국 퍼스널 컴퓨터와 함께 걸음마를 떼고 자라온 X세대가 예상보다 빠른 AI시대가 열린 지금, 여전히 무대의 중앙에 서 있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실제 AI시대의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X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된 시니어들이 IMF이후 굳어진 40대 은퇴 국룰에 따라 빠르게 무대 밖으로 밀려 나갈 것으로 예측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MZ가 무대에 오르기 전, 이미 퇴장해서 386도 없는 넓은 무대에 X만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다. 춤추기를 멈출 수 없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가 신겨진 발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X세대를 바라보는 MZ의 시선이 그래서 당혹스럽다.

“얘들아. 여기 왜 우리만 서 있는 것인지 몰라. 그리고 너희 들어오는 문 내가 닫은 거 아니야!”

숙련공의 역설 - AI를 쥔 대장장이들

나 역시 그들의 막연함을 안다. 취직자리 하나만 보고 잠자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들어갔더니 눈 뜨고 일어나면 굵직한 회사가 없어졌더라 하는 시대에 빚보증으로 망한 집에서 간신히 등록금 넣고 학교 다니던 세대이니까. 모든 이에게 녹록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들 중 X세대만 떼 놓고 보면, 국내는 IMF, 크게 보면 닷컴 버블, 그 이후로는 IMF때 보다 더 힘들다는 뉴스는 심드렁하게 볼만큼 자주 보던 일이다. 이번 갑작스러운 AI시대의 시작으로 일자리의 멸종으로까지 표현되는 것을 보면서 몇 년 전 유행하다 사라진 메타버스 같은 것 아닌가?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먹음직한 뉴스거리를 보고 너도나도 미디어에 싣다 보니 경쟁적으로 공포감까지 조성하는 경우는 너무 흔했다. TV앞에서 대화할 때마다 자꾸 쓸데없는 검색을 실행하는 스마트 스피커보다 좀 똑똑한 것이 나온 모양이지? 하는 것이 AI시대를 보는 막연한 감상이었다.

“키우는 개도 이왕 똑똑하면 좋은데 스마트 기기가 똑똑해졌으면 좋은 거지 뭐가 문제라고들 이래?”

새로운 기기는 하루 이틀 써 보면 패턴이 있고, 심지어 기기가 똑똑해질수록 사용법은 비례해서 쉬워지고 있다. 입력기기는 키보드만 있던 시대에서 마우스를 거쳐 이제 직접 화면을 눌러쓰기도 하는 시대까지 온 것이 아닌가. 레트로 붐이 불며 터치 스크린과 마우스를 없앤 것도 아니고, 원래 쓰는 PC와 스마트폰에 AI 이식이 되었을 뿐, 그간 서로의 발전을 돕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비약적 발전 중 이번엔 소프트웨어의 도약이 온 것인데 이것이 순식간에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인간은 노동에서 소외되는 디스토피아가 온다고?


왜 X세대 관점만을 나열하는지 궁금하실 분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기술의 혁신을 바라보는 다른 세대의 관점을 경험하거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에 X세대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점을 밝힌다. 모르는 것을 쓸 수는 없으니…… 물론 X세대를 대표할 의견은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세대가 기술 발전을 따라잡으며 적응하면서 달리는 기관차 위에 서서 아직 깔리지 않은 철로를 놓으며 여기까지 온 기분이다. 달리는 기차를 멈추지 않고 길을 깔며 달리도록 적응한 대장장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가 탄 객차 꼬리가 뭉텅 잘려 있다. M세대까지는 탔는데 Z세대 칸이 없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선배들은 직접 철로를 깔며 20년 정도 달리면 10년 정도는 앉아있다가 내렸는데, 내 바로 전 대장장이들은 철로 깔기에서 손을 떼자마자 내렸다. 더 이상 숙련자들을 키우지 않는 기차에서 과연 X들은 몇 년을 엿가락처럼 늘린 노동현장의 망령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당장 신입을 뽑지 않고 연차 있는 과장, 부장급이 팀에서 하던 일들을 혼자서 하는 장면은 이미 흔하다. 상용화 버전의 AI가 보급된 지 1년도 되지 않는 사이 일어난 일이다. 기업은 원래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니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AI 사용 능력이 있는 시니어에게 월급 인상을 해 주더라도 신입 채용 없이 가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분기의 기업의 생존이 불투명한테 십 년 후 경력직이 소멸되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속담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말이 있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기차에 아직 타지 못한 Z세대들은 대강 X세대들의 자녀쯤 되는 연령층이다.

일찍 기차에서 내린 부모세대의 병원비 청구서와 Z세대 자녀의 학원비 영수증을 받은 X세대의 모습은 말 그대로 내 모습이다.


“아. 난 기차에서 못 내리는구나.”


가장 맞벌이가 활성화된 우리 세대가 매번 모이는 돈이 없는 것은 풍요로운 사회에서 높은 품위유지비를 지출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줄일 수 없는 지출 항목은 예상보다 강력하고 고정적이다.

사람이 사람 노릇 하고 살려니 자꾸 돈이 든다.


최선보다는 차악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제 AI시대의 디스토피아는 무섭지 않아 졌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누군가가 AI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대체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하지만 AI는 확실히 인류에게 위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인 것은 맞다.

내가 준 키워드로 1년 가르친 신입사원의 능력치를 상회하는 PPT자료를 보는, 편리하면서도 께름칙한 경험은, 이미 도구에게 제어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세상이 온 것일까? 하는 입 밖으로 꺼내기 쩨쩨하지만 서늘한 불편한 감정을 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AI라는 낯선 망치를 고쳐 쥔다. 아직 기차에 못 탄 Z가 탈 자리를 만들 때까지는 담금질하고, 철로를 깔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들은 대사가 스친다.

“우리는 이번에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