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까기인형, 트럼프의 러시안룰렛
대문 열고 살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시대가 열리기도 전부터 이미 '친구와 이웃'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몽둥이처럼 꺼내 휘두를 때부터 말이다. 그냥 휘둘러보는 작대기일지, 힘주어 내리치는 일격일지 알 턱이 있나? 일단 피하는 수밖에.
특히 한국에게는 이 상황이 더 복잡하다. 트럼프는 지난 1기 때 공공연히 "한국은 부자면서 미국에 안보 무임 승차하고 있다." 며 목소리를 높이던 중 그의 임기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제 넉넉한 임기를 보충한 모두까기인형 트럼프가 돌아왔다.
하지만 ‘음? 전에 이런 꿈꿨던 것 같은데?.’
트럼프 1기 당선 당시에도 한국은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끌려 내려가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돌아온 트럼프' 앞의 한국의 대통령 자리는 또다시 공석이었다.
큰 위기를 다른 위기로 막았다고 보아야 할지 복잡한 심정 이지만 어찌 되었든 작년 한 해, 집안에 난 불을 끄는 동안 트럼프의 1순위는 한국을 빗겨 나가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의 이웃인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넘어갔다.
새옹지마라더니, 참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이 짧은 유예 기간 동안, 한국 외교는 냉철한 계산에 돌입했다. 트럼프의 '눈먼 총'에 맞아 죽기보다는 사탕을 쥐여주고 총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계산의 결과물이 바로 APEC에서 수여된 금관이다. 이는 단순한 예우가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의 strong man에 대한 지향을 지렛대 삼아 당장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약소국의 필생의 일격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간 미국의 ‘No Kings protests" (노 킹스 시위)’의 노력을 알기에 금관 선물의 여파에 대해서는 미국의 국민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일로 미국 유권자들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관세 위협을 하던 트럼프의 폭주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던 점에 대해서도 용서하기로 했다.
이제 각자 집안일은 알아서 하기로 하자.
총알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러시안룰렛과 같았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가당착(自家撞着)을 맞이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몽둥이처럼 휘둘렀던 그 관세가 미국 정부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다행히 미국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이긴 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트럼프 독단으로 체결한 관세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이니 말이다. 도의적 차원보다 관세는 결국 미 국민의 주머니에서 빼낸 돈을 미 정부가 가져가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 작동한 결과로 봐야 하지만, 어느 나라나 이익이 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동맹들이 예상외로 오래 버티는 변수가 생겨서 미국의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력이 드러나기 전에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한 패착인 것인지, 혹은 미국의 손해는 있어도 트럼프 개인으로서는 얻은 것이 있는 장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은 재판의 결과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여러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초래한 공포와 유감은 단순히 '파격적인 사람'이 만든 일회성 코미디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등장은 미국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구조적 결함의 필연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교육이 무너지고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시점 과거 중공업의 영광이 스러져간 자리에 트럼프가 등장했다.
쉬운 말과 쉬운 이분법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백인우월주의 남성.
시대가 100년 정도 회귀하는 것일까? 실제 트럼프는 취임 100일 만에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무드를 만들어냈다. 그럼 나도 트럼프처럼 쉬운 말과 쉬운 이분법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지도자다운 면모를 끌어내 트럼프처럼 똑 부러지게 슬로건을 외쳐볼까?
'유 썩스! (You Suck!)'
방금 이 문장을 읽으며 불편한 감정이 들 것이다. 굳이 무례한 언행을 따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언짢은 기분 말이다.
그저 한낱 글쟁이의 과격한 말 한마디도 이렇게나 책임과 무게가 크다.
하물며 자타공인 G1의 자리에 선 트럼프의 러시안룰렛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감을 넘어 공포를 불러일으켰을까?
이 공포 속에서 한국 외교가 꺼내 든 금관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 개인의 이상향을 공략하는 냉정한 외교적 유인책이자, 미국 사회 전체에 던지는 도발적인 메시지였다.
한국 정부는 "No Kings protests"의 노력을 알고 있었기에, 트럼프에게 금관을 수여하는 행위가 미국 국민들에게는 극도의 모순으로 비칠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행위를 감행한 것은, 제왕적 지위를 지향하는 G1의 일인자를 공략함으로써 당장의 실리를 확보하려는 약소국의 필생의 외교적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관 외교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복합적이며 냉소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에게 '당신은 특별하다'는 만족감을 주어 총구를 잠시 거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신들의 집안일(교육 실패, 반지성주의, 정치적 분열)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공포를 만들었다. 우리도 살기 위해 우리를 지킬 방법을 찾고 싶다. 트럼프의 말처럼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한국으로서, 중국 견제에 유효한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금관이 트럼프의 손에 들리게 된 것이다. 천년 전 신라의 유산이 천년 후 우리에게 그간 그렇게 공들여도 얻기 힘들었던 ‘핵연료 재처리 승인’을 가져다준 것이다. 문화의 힘은 곧 국력이었다. 한국에게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화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었을까? 서두에 쓴 것같이 이제 대문 열고 사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밤새 내린 서리 같은 트럼프가 돌아가고 월동준비가 한창이다. 추운 계절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골칫덩이였던 트럼프의 등장은 특히 한국에게는 단순한 정치 해프닝이 아니었다. 트럼프로 보여준 동맹의 변화는 '대문 열고 살던 시대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세계화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추운 계절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서리 같은 경고였다.
트럼프의 의중은 알 수 없으나 그의 명확한 액션에서 우리가 읽은 것은 그간 친근했던 동맹의 또 다른 얼굴이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지만, 지금 미국이 이끌어온 ‘팍스 아메리카나’는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식민국가들의 피의 역사 위에 세워졌던 평화였다는 것을 재확인한 기회였다. 다행히 지금의 한국은 지난 제국주의의 겨울을 속수무책으로 맞았던 그때의 약소국이 아니다.
트럼프 시대의 경험이 남긴 결론은 명확하다. 동맹이란 우정이나 가치 공유가 아니라, 총구에서 벗어나기 위한 냉철한 '거래'이자 '외교적 보험'일뿐이다. 미국은 관세 소송을 통해 사법적 복원력을 보였으나, 트럼프를 낳은 공교육 실패와 반지성주의라는 구조적 결함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광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 토양이 존재하는 한, 트럼프 같은 총잡이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밤새 내린 서리'가 내리는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월동 준비이다. 우리는 이번에 총잡이의 허영심이라는 약점을 공략하는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음번 '광기'가 닥쳤을 때 또다시 '사탕'으로 해결하기를 바라면 안 될 테니까.
우리가 "각자 집안일은 알아서 하자"는 냉정한 선언을 완성한 이상, 이제 우리의 숙제는 "No Master"를 외치는 것이다. 평화의 시대에 홀로 남은 분단국으로 손에서 총을 놓을 수 없었던 한국의 고단한 현대사 덕에 불 꺼진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방산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전화위복을 맞은 것도 예상치 못했던 기회의 얼굴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이 오면, 땔감을 수북이 쌓고 불이 꺼지지 않게 돌보며 아침을 기다리는 법이다. 유독 가혹했던 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도 묵묵히 벽돌을 쌓아 올리고 땔감을 채워 넣은 그 지독한 성실함이 이제는 우리를 지켜 줄 유일한 성벽이 되었음을 믿는다. 겨울을 피할 수는 없지만 무사히 지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