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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Nov 05. 2023

C 기장님 vs K 기장님



C 기장님과 비행을 하다가,

K 기장님 이야기가 나왔다.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금 보충 설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C 기장님은 동네 형 같은 기장님이다. 장난 좋아하시는 성격에 유쾌하고, 같이 비행을 하면 너무 웃겨서 웃기만 하다가 비행이 끝나버린다. 일례로, 얼마 전 C 기장님과 3시간 정도의 비행이 끝난 후 호텔에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사무장님께서 말씀하시길,


"기장님, 칵핏에서 웃음소리밖에 안 들리던데 사회생활 하신 거예요?"

"아휴 아니요. 기장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정말 재밌어서 웃었어요."

"무슨 웃음소리가 이 비행만 기다리신 것 같아요."



반면 K 기장님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말 그대로 부처님. 세계 4대 성인에서 한 명을 추가하자면 K 기장님의 성함이 포함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인상에서부터 온화함과 부드러움이 흘러넘치는 분이시고, 기장님이기 전에 어른으로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분이다. 특히 말씀을 하실 때 표현을 하는 데 있어서 세상의 모든 긍정과 배려를 끌어오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성격적으로 정 반대에 있는 두 기장님께서 서로 인연이 있으시니, 10년도 더 전에 미국에서 비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라 하셨다. C 기장님께서는 K 기장님과 항공사에 와서 같이 비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셨기에, 부기장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하다고 물으셨고, 나는 어떤 표현을 써야 가장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K 형 이미지가 어때? 나는 진짜 너무 궁금해."

"K 기장님은 정말..."

"왜? 부기장님들한테 꼰대야?"

"혹시 K 기장님께서 예전에 어떠셨어요?"

"우리한테는 진짜 좋은 형이지. 나는 형이 욕하고, 술 먹고 풀어지는 모습 보는 게 소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알지 알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만약 평생 부기장으로 생활하는 대신 K 기장님이랑만 비행해야 한다면, 전 평생 부기장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 그 정도야?"


내가 K 기장님에 대한 거의 팬심에 가까운 칭찬을 늘어놓자, C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그 정도의 찬사가 나오는 거야?"

"예를 들면, 저번에 비행을 하는데 제가 Flare 조작(항공기가 착륙하기 직전, 강하율을 줄이는 조작)이 조금 늦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 Flare 양을 조금 더 가져가면서... 아무튼 제 마음에 들지 않은 랜딩이었는데 끝나고 딱 한 말씀하시더라고요."


'망고 부기장은 끝까지 침하를 보는구나?'


"캬.... K 형 진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말씀해 주시기보단, 제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잡으려고 노력해 주시는걸 저 한마디로 표현해 주시는데.. 그때 제 눈이 하트가 된 걸 보셨나 모르겠어요."

"나도 한번 K 형처럼 말해볼까?"

"기장님은 안 어울리실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하여 시작된 장난꾸러기 C 기장님의 정제된 표현.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말투가 어울리는 게 없었으니, 그 모습이 웃겨서 서로 한참을 또 웃다가 시계를 보니 정각이 지나고 있었다. 40분 정도 있으면 곧 착륙이었기에, 나는 정각마다 업데이트되는 기상을 출력하기 위해 비행기에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기침을 자꾸하니, 챙겨주신 스윗한 C 기장님



21시 2분 정도에 기상을 뽑아보니 아직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다.

21시 3분에 다시 기상을 뽑아보니 또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었다.

21시 5분에 다시 또 기상을 뽑아봤고, 여전히 20시 기상으로 남아있었다.


어떻게 보면 계속 종이를 낭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곤,


"아니 지금 종이를 얼마나 낭비하는 거야. 탄소저감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

"ㅋㅋㅋㅋ 아니 기장님, 분명 5분 전에 K 기장님처럼 말씀하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치, 여기서 K 형은 뭐라고 말할까? 탄소 저감에 우리 같이 힘써볼까요? 뭐 이런 식인가?"

"아니죠. 여기서 K 기장님이셨다면... '망고 부기장님은 내가 기상 궁금한 거 어떻게 알고'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캬....."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진짜 나는 부정적이라 저런 대사는 생각도 못하겠다."


C 기장님은 조금 생각하시더니,


"난 아무래도 안 되겠다. 태생이 안 되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비행이 끝나고 호텔방에 들어가는 길,

방에 들어가기 전에 기장님께서 멈칫하신다.


"왜요 기장님?"

"아니, 보통 여기서 K 형이라면 뭐라고 부기장님들에게 얘기할까 싶어서."

"기장님 그냥 얼른 들어가 쉬세요. 지금 밤새고 왔는데 생각 많이 하시면 안 됩니다 ㅋㅋㅋㅋ"

"ㅋㅋㅋㅋ 그치? 난 안 되겠지? 에라이."


C 기장님과의 2박 3일 비행,

장난만 치다가, 기장님과 비행이 나왔다고 했을 때

동기들이 다 부러워했다는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다.


올해 연말은 유난히 따듯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열돔 현상으로, 뜨겁게 달궈진 공기 덩어리들이 반구 형태로 갇혀 지표면 온도를...


아니아니,

좋은 기장님들 덕분에 들어서는 따스한 겨울이다.

나도 K 기장님처럼 긍정적으로 끝맺음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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