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곡한 위로 2
창고를 뒤졌더니 주샤오메이의 뜯지 않은 LP가 있었어요. 푸가의 기법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스레드에서 본 음반인데 악센투스뮤직 레이블의 LP를 사면서 같이 사 두었던 모양입니다. (Accentus는 정말 취향저격의 디자인입니다.) 아무튼, 주샤오메이의 연주를 들으면서, 시냇물에 손을 뻗어서는 물을 들어 올려 물컹물컹 베어무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주샤오메이의 고단한 삶이 녹아들어 있을 테지만 들려오는 음향은, 물을 입술에 묻히고 밝게 웃는 소녀 같습니다. 바흐가 실험가였다면 주샤오메이는 음악가인 셈입니다.
연주는 보통, 연주자의 삶과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레코드에 만족하지 않고) 연주회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연주자를 보기 위한 것이에요. 그저 '연주자를 보는 것'입니다. 연주자는 하나의 텍스트인 동시에 음악이라는 콘텍스트를 파생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가령 푸가의 기법은 주샤오메이를 만들어냅니다. 바흐와 주샤오메이의 이런 상호 텍스트성이 있듯 이 사람, 이 음악을 글로 바꿔낼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저의 글쓰기 관점입니다.
주샤오메이의 연주는, 연주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줍니다. 제 글도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이고, 저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