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너머의 가능성 / 환자를 돌보던 손길로

by 현진현

계산대 너머의 가능성


민정미 씨에겐 동네에서 장을 볼 때마다 들르는 작은 마트가 하나 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 마트는 민정미 씨가 10년 넘게 이용해 온 단골 가게다. 그 마트의 사장은 언제 가봐도 계산대 옆에 서서 환학 웃는 얼굴로 직접 손님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늘은 고구마가 정말 좋아요. 어머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은데 한번 보세요’라고 추천도 해주곤 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 인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정말 성실하고 친근한 분이셨어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마트를 지키시면서, 동네 사람들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계셨거든요. ‘아, 어제 감기 걸리셨다던 아드님은 좀 어떠세요?’, ‘요즘 야근 많이 하신다고 하셨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이런 식으로 단골들의 안부까지 챙겨주시는 정말 따뜻한 분이었어요.


어느 날, 민정미 씨가 계산을 하면서 평소처럼 “사장님, 오늘도 고생 많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고생이야 뭐... 요즘엔 정말 힘들어요. 매출이 예전만 못해요.” 사장은 한숨을 푹 쉬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요즘 물가도 자꾸 오르고, 대형마트들이 할인 행사를 계속하니까 경쟁이 너무 심해졌어요. 하루 종일 일해도 예전 같지 않아요. 전기료,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매출은 줄어드니까 정말 막막해요.” 그 말속에는 피곤함과 답답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며칠 후, 다시 마트를 찾았을 때 민정미 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장님, 혹시 마트 운영 말고도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어볼 생각 있으세요? 요즘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던데요.”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이고, 저한테는 장사가 전부예요. 평생 이것만 해봤는데 다른 건 해본 적도 없고, 배우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나이도 이제 많은데…"라고 말했다.

민정미 씨는 설명했다. “사장님, 장사도 결국 사람과의 관계 아닌가요? 사장님은 이미 하루에도 수십 명의 단골 고객들과 얼굴을 마주하시잖아요. 그분들이 모두 사장님을 믿고 찾아오시는 거고요. 그게 바로 엄청난 자산이에요. 지금까지 쌓아오신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그 후로 민정미 씨는 장을 볼 때마다 사장과 조금씩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 얘기, 동네 소식 같은 일상적인 대화도 있었지만 사장의 고민과 마트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요즘 젊은 손님들은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 걸 선호하시더라고요”, “단골 할머니께서 무릎이 아프셔서 자주 못 오신다고 하시네요”, “옆 건물에 편의점이 하나 더 생겨서 걱정이에요.” 민정미 씨는, 사장의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마트 주인이야말로 동네 사람들의 삶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먼저 물어왔다. “그때 말씀하셨던 그 일... 한번 자세히 들어볼까요? 요즘 정말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정미 씨는 저는 그 자리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사장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금도 손님들의 필요를 파악해서 좋은 상품을 추천해 주시잖아요? 이번에는 생활용품 대신 미래의 안정을 추천해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장님이 가진 단골 네트워크는 이미 훌륭한 기반이에요. 30년간 쌓아온 신뢰관계가 있으니까, 다만 파는 상품이 식품에서 가족의 미래로 바뀌는 거죠.”

역시, 사장은 ‘제가 과연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라고 주저했다. 하지만 마트 일과도 병행할 수 있고, 단골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거라는 민정미 씨의 설명을 듣고서는, 결심했다.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다만 천천히,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요.”


처음 몇 주는 정말 서툴렀어요. 마트에서 계산을 해드리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실제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을 도와드렸어요. “사장님, 이렇게 시작해 보세요. ‘요즘 아드님 직장 생활은 어떠세요?’라고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어보시고, 그다음에 ‘요즘 젊은 분들 미래 준비하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해요’라고 이어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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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비평 당선 /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취미-취향을 글쓰기로 이어주는 글쓰기 코치와 전기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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