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레코드(2/3)

단편소설 연재

by 현진현

연습

“우와, 첼로 소리 좋다. 역시 라이브니까.”

음대의 유서 깊고도 운치 넘치는 골목을 헤쳐 나가면서 내가 말했다. 음대에는 여대생이 많았고 수많은 여대생 사이를 빠져나가는 건, 거듭하다 보니 썩 좋은 재미였다. 소녀가 대답했다.

“저건 비올라 소리예요.”

‘아, 그렇구나!’

시내 외진 골목 안에 자리한 브람스레코드는 직장인 손님이 많은 편이라 퇴근시간 이전에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 덕에 나는 소녀가 수업을 일찍 마치는 날이면 오후 무렵 소녀가 다니는 음대의 연습실로 숨어들 수 있었다. 다섯 정거장, 가게에서 연습실까지 가는 그 시간이 나는 행복했다.

연습실 건물에는 고시원처럼 각이 진 방이 가득 차 있었는데 1층에는 큰 풍금처럼 생긴 오르간들이 있었고 2층과 3층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는 방이 많았다. 4층에는 피아노는 없이 보면대(譜面臺)만 있는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연습실 앞 널따란 정원에 있던, 한때는 파란색이었을 하늘색 벤치. 빛이 바래고 페인트가 벗겨진 그 벤치에 앉으면 온갖 리듬의 피아노소리와 각자의 피아노를 대동한 소프라노, 테너, 알토, 바리톤, 베이스,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그 사이사이 예고 없이 등장하는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클라리넷, 거기에다 오르간의 장대함까지 겹쳐진 전위적인 음향이 들려왔다. 나는 그 벤치에 앉아 바흐(J. S. Bach)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한꺼번에 감상하며 이른 오후의 달고도 곤한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그곳 연습실에서 소녀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봄날부터 시작해 찌는 듯 더운 여름을 거쳐 늦은 겨울까지, 나는 학생이 되었고 소녀는 선생님이 되었다.

연습실은 제각기 독립된 공간이어서 데이트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과할 정도로 열심인 선생이었고 나는 굼뜬데다 집중력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연습실에서의 수업이란 대부분 소녀의 연주를 듣는 감상의 시간이었다.

마음속으로야 소녀의 열정적인 순간들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내 피아노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소녀가 두 대의 피아노용으로 편곡된 차이코프스키(P. Tchaikovsky) 협주곡의 연습용 악보를 펼쳐들 때마다 나는, 내가 피아노를 쳐서 반주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내 피아노 실력을 원망해야만 했다.

늘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던 소녀는 땀을 많이 흘렸다. 힘찬 타건(打鍵) 때문이었다. 소녀의 몸이 강렬한 음향으로 둔갑하는 순간 소녀의 땀이 귀밑으로 흘러내리곤 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v) 같은 낭만주의 시대의 곡을 연습하는 날에는 땀을 더 많이 흘렸다. 나 역시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기도 했지만 송골송골 맺히는 소녀의 땀이 싫지 않았다. 땀 냄새는 서로 조금 달랐다. 내게서는 나의 냄새가 났고 소녀에게서는 소녀의 냄새가 났다.

우리가 연습을 마치고 아직 어스름한 저녁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땀에 푹 젖어 있는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안개 자욱한 봄날의 새벽녘처럼 몽롱해질 뿐이다.



폐사지

브람스레코드에서는 브람스를 제법 자주 틀어 둔다. 나는 브람스의 음악을 꽤나 좋아하고, 한동안은 줄곧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만 듣기도 했었다.

교향곡 제1번 다단조 작품번호 68.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은 곧잘 베토벤의 교향곡들과 비교된다. 브람스가 이십 년이 넘게 걸려 작곡한, 이십 대의 나를 울렸던 이 교향곡의 1악장 역시 브람스의 청년 시절에 작곡되었다. 나머지 악장을 작곡한 것은 시간이 좀 지난 후였다고 한다.

그때! 그래 그때 내가 듣던 1악장이 누구의 지휘였는지 어떤 이들의 연주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 위대한 교향곡마저도 듣다 말게 한 또 다른 예술품을 이야기하려는 참이니까.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남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막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맞고 있었다. 빗줄기는 각도가 큰 사선으로 차창에 급하게 부딪히고 있었다. 한 삼사십 분 달리자 바다 냄새가 차창을 넘어 코끝에 스쳐왔다. 저 앞에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가 버티고 있을 것이었다. 순간, 나는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그곳에 우뚝하니 거대한 쌍탑이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감은사지탑이었다.

브람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브람스를 들려주던 이어폰을 팽개치고 운전을 하고 있던 기사에게 소리치고 말았으니까.

“아저씨, 내려요!”

소녀가 나를 따라 내렸다. 갑작스러운 정차에 놀란 승객 몇 명은 저 사람 왜 저러냐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갠 하늘 아래, 폐사지의 돌무더기 위에서 사과를 깎아먹었다. 쌍탑은 말 그대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아름다워서 사과 맛은 느낄 수도 없었다. 사과를 다 먹은 우리는 걸어서 바다로 갔다.

소녀는 그날 밤 내게 물었다.

“나, 뚱뚱하죠? 이 팔뚝 좀 보세요. 뚱뚱하죠? 그렇죠?”

나는 살며시 소녀를 안았다.

“내가 뚱뚱한 건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예요. 난 힘이 부족해서 몸무게라도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저씨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 소녀가 해초와도 같았다는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소녀와의 추억을 기록한 유일한 사진은 그곳 바닷가에서 바위에 걸터앉은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바닷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려 얼굴을 다 덮어버린 소녀의 얼굴은 아마도 웃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민박집 창밖은 아직 시커멨다. 그런데 간유리가 진동하도록 북소리들이 울려왔다. 둥, 둥, 둥, 둥둥, 둥둥, 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둥둥둥둥둥 ……. 북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녀와 나는 옷을 꿰어 입고 눈을 비비며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해가 떠오르려고 했다. 아, 그리고 일제히 바다를 향해 북을 치며 제(祭)를 올리는 수많은 무당과 박수들. 기원(祈願)은 역시 예술의 시작이자 정점이었다. 어둠을 때려 부수듯 북소리가 빨라지자 불쑥 해가 떠올랐다.

소녀는 내 품에 안겼다. 그 따뜻함은 불과 몇 시간 전 밤의 어둠 속에서 내 품에 안겼던 뜨거움보다 강렬했다. 소녀와 나는 숭고해져 버린 걸까.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서 멈추지 않는 북소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듯 긴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품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리고 소녀는 지독한 아름다움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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