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없으면 죽냐?

인문학과 카피의 사회사

by 현진현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거 못 신으면 죽냐?" "우리 반 애들 다 신고 다녀." 죽기야 하겠어? 엄마... 그냥 갖고 싶단 거지. 그리고 형은 신고 다니잖아. 엄마는 두고두고 내가 한 말을 우려 드셨다. 쟤가 어릴 때부터 재미난 얘기를 많이 해댔잖아. 지네반 애들이 다 신고 다닌대. 하하하. 뭐 결론적으로 나는 그거 없어도 안 죽고 형이 새 신발을 살 때까지 기다렸다.

요즘 종종 형이 처음으로 샀던 네이비색 나이키 러닝화가 생각이 난다. 페이스북에 옮겨진 내년 최저임금 관련 칼럼에 '그거 없으면 죽냐?'는 옛날 어른들 말씀이 있길래 지금 또, 막 생각이 났다.

[그거 없으면 안 죽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막 죽을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말로 인문학적이지 않은 것과 인문학적인 것을 구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단적으로 광고 카피란, '그거'를 '그 사람'으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제품을 파는 데에 있어서 그 제품이 없는 상황이 마치 그 사람이 없는 상황인 것처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물론 사기에 가까운데 이런 사기 치기는 당하는 사람도 알고 당하는 사기 치기.

직접적으로 사람을 가져오는 인문학적 발상이 있다. [사람을 향합니다] 같은 부류다. 본질적으로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재고 소진을 향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갑자기, 그래 갑자기 사람을 향한다고 하는 전법이다.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총을 겨누며,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친구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하며 탕! 한 발의 총성을 울리는 카피다. 또, 코스메틱 브랜드가 어떤 새로운 작용을 하는 제품을 이야기하는 대신 이런 카피를 쓴다. [20대여 영원하라] - [20대여 영원하라]는 카피는, 30대로 전입하는 여자들에게 없으면 막 죽을지도 모른다는 환각을 심어줬을지 모른다. 그만큼 인문학적인 카피다. 심리학적인 카피다. 이쯤 되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랑'을 산다. 사랑은 사지 못하므로 사랑을 드러낸다. '검정치마'의 노랫말 중에 [영원히 기다릴게요]라고 하지 않고 [기다린 만큼 더 기다릴 수 있지만]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이런 인문학적 감성은 진정성을 내포한다. 인문학적 카피가 이런 것이라면,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카피라이터도 있을 텐데 보통 소양은 카피로 연결이 된다.

인문학적 사고방식의 가장 쉬운 방법은, 곰곰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발끈하지 않고 그 무엇도 저주하지 않으며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2단계 도서관으로 찾아간다. 아무 책이나 펼쳐 들고 읽히는 만큼만 읽고 책을 덮는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의 얼굴을 마음속에서 그려보라. 그러다 보면 없던 소양도 생길지 모른다.


"야! 저 선배 말이야, 폄하를 몰라. 폄하를." 하얀 치마를 입은 입사동기 S가 저기서부터 내게 다가서며 웃으며 말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폄하가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고!" 모를 수도 있는데... 그게 뭐 그렇게 웃기는 건가, 하고 생각. "아니, K선배가, 폄하가, 무슨 뜻인지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그런가? 그렇긴 한데 광고회사 다니는 미술대학 나온 분들이 영어나 한자어에 좀 약하긴 하지. 난 뭐 미대를 나오지 않았는데도 영어에 약한 편이니까. 보통의 카피라이터들, 특히 요즘의 카피라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할 건데 그건 그들이 영어를 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적으로, 저 선배 K가 한자어를 몰랐던 것은 한자어를 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고.

인문학적인 것이 언어가 되고 있어서 광고도 그것을 따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광고의 방법론이 마치 과학적 통계로 변경된 것처럼 말들 하지만 계측이 가능한 만큼은 늘 그래 왔다. 쉽게, 광고의 사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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