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카피

글의 스트레칭

by 현진현

여기는 창원 사림동 한편, 들꽃을 밟아 걷는 출근길, 문득 아내의 카피가 생각납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턱은 살짝 당기고 시선은 멀리]


어딘가에서 읽은 말이겠지만, 아내는 어깨에 힘을 빼는 법도 덧붙였습니다. - 위로 힘을 줘서 당겨 올렸다가 툭, 하고 힘을 빼. - 어깨가 하늘로부터 떨어져서 힘이 빠집니다. 턱은 자연스럽게 당겨지고 시선은 편안해집니다.


스트레칭은 몸은 위한 것인가요? 정신을 위한 것인가요? 네, 몸과 정신은 한 몸이고 하나의 정신이죠.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행위도 스트레칭이고, 한동안 멍 때리는 행동도 스트레칭입니다. 팔을 들어 올리고 다리를 펴고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만 스트레칭은 아닐 겁니다. 힘을 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한데 왠지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만수'라는 불세출의 야구선수가 있었습니다. 만수 형은 라이온스의 포수였고 홈런타자였습니다. 포수로서는 파이팅이 좋았고 홈런타자로서도 '한 번 걸리면 홈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라이온스에는 '영원한 4할 타자' 백인천 감독이 부임합니다. 만수 형의 타격을 지켜보던 백 감독님은 어느 날 만수 형을 부릅니다. 그리고 형의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하죠. 그런 다음, 굵은 매직으로 손바닥에 적어줍니다.


[손에 힘 빼고!]


그날 이후 만수 형의 타격이 더 좋아졌는지 그대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왠지 힘을 빼는 일은 중요한 일 같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칭은 어디까지 힘을 빼는 '훈련'임이 틀림없습니다. 반복되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힘을 빼면 글도 일필휘지에 가까워집니다. 카피는 짧은 글에 가까우니 진짜 일필휘지가 되고 말겠죠. 머릿속에서도 힘을 빼는 것, 손에 힘을 빼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겠지만 몇몇 카피라이터분들은 분명히 긴 시간 다져진 정신의 스트레칭 상태로 카피를 뽑아냅니다.


[SSAC 바뀐 CASS]는 맥주의 기포만큼이나 가볍습니다. [전격 DB다이렉트]나 [모든 것이 바라던 바다], [무관중이 무한 관중이 되고] 같은 말장난들도 정겹습니다. [110 YEARS 110 FILLA] [더 부드럽지만 더 소주 같은 맛] [영어력 터뜨리는 Magical Pot] [새로 시작하는 힘] 같은, 전략이 있는 듯 없는 듯(광고주가 정한 듯)한 카피들도 힘을 빼서 가볍긴 매한가지입니다. 힘이 좀 들어간 듯 안 들어간 듯하죠. - 힘 빼고 쓴 요즘 카피들을 찾기가 좀 힘이 들긴 합니다.

지지난 세대 [자장자장](냉장고의 소음이 없다는 의미)이나 [쉿!](자동차의 주행소음이 적다는) 같은 카피나 [엄마가 해주신 밥] [스승의 날에야 찾아뵙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스트레칭 하면서 썼음직한 카피들이 그립습니다. 사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바르게 되어서 진정성도 발현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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