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신이 지금도 중용되고 있다

by 현진현

이렇게 저렇게 지내다 보니 직장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략 3년 정도를 더 직장에서 일하겠다 다짐하고 나니, 내 아버지 시절 군대를 한 번 더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의 우리 세대는, 시작부터 행군이었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 재수를 하면 수능시험을 봐야 하는 세대, 어정쩡하게 가난했던 세대, 그래서 어학연수 가기가 힘들었던 세대, 대단한 앞 세대에 늘 뒤처진 세대, IMF가 인생의 발목을 잡았던 세대, 상사들은 출근해 신문을 보고 커피를 마시는 것을 쳐다보며 미래를 꿈꾸었던 세대, 그렇지만 상사가 되었을 때 과장처럼 일해야 하는 세대, 은퇴하고도 신입으로 입사해야 하는 세대… 물론 나는 프리랜서로 일할 것이지만.

광고회사에 갔더니 일이 많아지는 동시에 디지털이라는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공무원이 되니까 호평일색 공무원 복지가 일반회사 복지보다 낙후되는 것을 목격했다. 견뎌볼까 하다 권유를 받아 건설분양 광고회사로 옮겼는데 건설 경기가 바닥을 치고…

이십 대의 되찾고 싶은 기억을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는 세대… 내향형 인간인 나는 왜 내 속에 그 무엇도 쌓아두지 못한 것일까. 다행이라면 대부분의 다른 세대들도 피해의식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때 1994년에서는 당연하게도, 2025년은 분명,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말이 씨가 되듯 과학자들이 예견한 미래가 현재로 와버려서 우리는 숙명처럼 오래된 미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90년대에도 바로크음악을 들었고 2024년 12월의 어느 날인 지금도 바로크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온다. 바로크나 고전주의의 이면에는 폭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랬을 것 같다. 언어는 폭력에 복종해, 다소곳한 나긋나긋한 폴리포니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대위법을 이용해 거대한 형식미를 추구해 나가면서 폭력을 외면했을 것이다. 그때의 신이 지금도 중용되고 있다. 94년이나 2024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슬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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