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고등학생이지만 진탕 마셔댔다. 고등학생인 것이 슬퍼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슬픔이었는지 가늠할 수는 없다. 지금에서 보면 멍하고 멍청한 계절이었다. 언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괴로웠을 수도 있다. 내 방에는 누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뒹굴었다. 나중에 친가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면서 책들을 쌀자루에 넣었다. 책은 두 가마니가 되었고 자루를 뚫고 나올 듯 모서리를 부라렸다. 그 시절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단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 이승을 바라보고 쓰는 하찮은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 두 번째 하숙집이 기억난다. 그 집은 하숙을 위해 만들어진 집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경북 이곳저곳 특히 대구를 벗어난 대구 주변에서 학생들이 들어왔다. 재수를 해서 입학에 성공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겨우 한 번에 입학했다. 대구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엔 멀었다. 첫 번째 하숙집에선 처음 하숙을 들어간 날 새 신발을 잃어버렸다. 벼르고 별러서 산 신발이었고 그땐 도둑이 새 신발만큼 많았다. 그리고 같은 방을 쓰던 아이가 나를 괴롭혔다. 두 번째 하숙집은 첫 번째 하숙집과는 달리 방이 많았고 하숙생이 많았고 친구도 두 명 있었다. 디귿자의 이층 건물이었는데 하숙생은 대략 예닐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 1층이었다. 2층에는 두세 커플의 부부들이 살았다. 그중 한 커플이 생각난다. 나이차가 있어 보였는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편은 인근 대학의 경비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그 여자는 어렸던 것 같고 한 살배기 딸이 있었다. 나는 종종, 종종 그 딸아이를 돌봐주었던 기억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토요일 오후면 나는 2층 복도에서 움직이는 가령 빨래를 널고 있는 그 여자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찾아 방 밖으로 들리도록 그 여자가 듣도록 음악을 크게 틀었다. 샹송이나 조관우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