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옛글나눔 Sep 25. 2021

융건릉의 도토리

배고플 때 힘이 되어 준 도토리의 활약

융건릉은 정조와 장조(사도세자) 부부의 왕릉이다. 입장 시간에 맞춰 사람이 없을 때 한적하게 걷다보면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큰길을 따라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나무는 쭉쭉 뻗은 소나무다. 안개 낀 어느 날 걸어본 이 길은 왠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하이파이브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이 났다.

안개 낀 융건릉 소나무숲

양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 숲길을 걷다보면 도토리나무(갈참나무)도 울창하다. 가을 도토리나무 밑을 지나다보니 사방이 도토리다.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줍지 말아달라는 주의사항이 잘 지켜지는 중인가보다. 도토리는 사실 '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뜻인 '도톨밤'에서 비롯된 말인데 만약 '멧돼지를 위해서 도토리를 줍지 말아주세요.'라고 했으면 귀여운 다람쥐에 비해 캠페인 효과는 떨어졌을 것 같다.

융건릉의 도토리

도토리는 흉년을 대비해서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하는 구황 작물 중 하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흉년을 구제하기 위해 도토리를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흉년에 대비해 일정한 수량의 도토리를 예비하도록 하다

"농사가 흉년이 든 각 고을의 구황(救荒)할 초식(草食)은 정한 수량이 없기 때문에, 많을 때는 폐기하기도 하고, 적을 때는 흉년을 구제하지 못하게 되오니, 지금부터 큰 고을에는 60석, 중간 고을에는 40석, 작은 고을에는 20석, 나머지 고을은 10석으로 일정한 수량을 정하여서 도토리[橡實]를 미리 준비하게 하고, 농사가 비교적 잘 된 각 고을은 반드시 수량에 구애되지 말고 적절하게 미리 준비하게 하소서."

 "失農各官救荒草食, 因無定數, 多或至於廢事, 小或失於荒政。 自今大戶六十石, 中戶四十石, 小戶二十石, 殘戶十石, 定爲恒數, 以橡實爲先考察預備, 其農事稍稔各官, 不必拘數, 隨宜儲備。"

《세종실록(世宗實錄)》 6년 8월 20일


조선시대 뿐 아니라 훨씬 앞서 신석기 유적에서도 불에 탄 도토리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귀여운 이름에 가려져 만만해 보이는 도토리는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던 귀한 식량자원이었던 것이다. 도토리는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구하기 쉽고, 가루로 만들어 두면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식량으로 쓰여졌다. 풍년이라 먹을 것 걱정이 없을 때는 '개밥의 도토리' 처럼 개도 멀리 하는 음식이다보니 도토리를 먹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는건 흉년이라 힘들다는 말과도 통한다. 도토리가 들어간 유명한 글로는 고려 후기에 쓰인 상율가(橡栗歌)-도톨밤 노래-가 있다. 국문학자이자 시인이셨던 양주동(1903~1977)선생님의 번역인데, 첫 구에서 도토리(橡栗)와 밤(栗)에 같은 율栗자가 들어가는 것을 재밌게 묘사한 부분을 살리시려고 도토리 대신 밤이 들어가는 '도톨밤'이라고 번역을 하신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도톨밤 노래[橡栗歌]

도톨밤 도톨밤 밤이 밤 아니거늘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지었는고

橡栗橡栗栗非栗

誰以橡栗爲之名

....

저 만 길 벼랑에 올라

칡덩굴 헤치며 매일 원숭이와 경쟁한다

陟彼崔嵬一萬仞

捫蘿日與猿狖爭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

두 다리는 동여놓은 듯 주린 창자 쪼르륵

崇朝掇拾不盈筐

兩股束縛飢腸鳴

...

차마 몸을 시궁창에 박고 죽을 수 없어

마을을 비우고 산에 올라 도토리며 밤이며 줍는다고

未忍將身轉溝壑

空巷登山拾橡栗

....


원문 전체를 보면 도토리를 귀엽게 그리며 시작하였지만  뒤는 시골 노인이 주린 배를 안고 도토리를 주으러 가는 고된 삶을 노래하고 그렇게  이유가 권세 있는 자들이 땅을 빼앗갔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하며 고관들이 풍족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 결국 백성의 고혈임을 꼬집는 내용으로 을 맺는다. 산짐승과 경쟁하듯 도토리를 주워야만 목숨을 부지할  있었던 당시의 애환이  그려진 작품이다. 요즘 다시 도토리로 시를 쓴다면 주제는 별미를 찾는 인간 때문에 배를 주려야  다람쥐 가족 애환이 되겠지. 풍족한 시대인지라 다람쥐를 경쟁자로 두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물론 도토리가 항상 애환의 상징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징비록(懲毖錄)을 쓰신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선생의 시 중에서 아침 저녁으로 도토리를 주워다 맛있게 구워먹었다는 내용을 보면 때때로 맛 좋은 영양간식의 역할도 한 모양이다.


산중(山中)에서 일이 없어 아이들과 도토리를 주우며 농을 삼다[원문보기]

山中無事。與兒輩拾橡。偶吟爲戲。

...

아침엔 동산 마루턱에 도토리 줍고

저물녘엔 동산 기슭에서 도토리 줍네

朝出拾橡東山巓

暮出拾橡東山足

...

아이 불러 시냇가 나무 주워다가

돌솥에 구우니 꿀맛 같네

呼童束薪西澗底

石鐺煮熟甘如蜜

...


그런데 밤은 구워 먹어봤어도 도토리도 구워먹을 수 있던가? 떫은 맛 때문에 가루로 만들 때도 여러 번 물을 빼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직접 먹어본 적이 없어서 서애선생이 정말 드셔보시고 맛있다고 한건지, 그냥 상상으로 쓰신건지 잘 모르겠다. 도토리를 직접 구워 드셔 본 적이 있으신지 주변 어르신들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천년의 스테디셀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