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N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운장 Jan 15. 2020

하코다테 2000엔 호텔

순수했던 내가 기뻐했던 곳

낯선 곳. 거긴 언제나 INN 있습니다.

대지를 돌아다니며 불과 하루 이틀 눈을 부쳤던 그곳.

INN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폭설로 멈춰 버린 전차 안. 

앞으로 살면서 분명 이 여행 보다 더한 여행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특별하게 무언가를 한 건 없었다. 

청춘18 열차표를 들고 오타루, 삿포로, 하코다테, 아오모리, 히로사키, 아키타에 내려 관광지 주변을 돌아보다 낡은 숙소에서 잠을 잤다. 


내가 잤던 곳은 캡슐 호텔일때도 있었고, 아늑한 게스트하우스 였던 적도 있었고, 홋카이도와 혼슈를 이어주는 연락선일때도 있었고, 옥상에 노천탕이 딸려 있는 근사한 비즈니스 호텔일 때도 있었다. 


나는 유학 생활의 고독에 지쳐 있었다. 되고 싶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 가지 않았고, 탈출구가 없던 하루하루 였다. 당장 이 곳을 떠날 수도 없었고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도 곁에 없이 그저 주변부만을 배회하며 혼자라는 것의 끔찍함을 1년 내내 느끼고 있었다. 


돈도 없었고, 그러다 어쩌다 귀국전에 여행이라도 갔다 오자는 마음으로 일본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하코다테라는 도시의 호텔. 역 뒷편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러브레터로 유명한 오타루에서 아침에 열차를 타고 하코다테로 왔다. 일반 열차를 타고 모든 역을 다 섰다. 홋카이도의 하얀 눈을 보며 하교 하는 고등학생들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 mp3로 스핏츠를 들으며..


그렇게 밤이 되었고 현대식의 근사한 하코다테에 도착한 나는 미리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단돈 2000엔.


2만원의 싼방이었다. 호리호리한 중년의 남자 직원이 나를 친절하게 맞이 해주었고, 이불을 추가 하지 않겠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방값은 2000엔으로 받고, 이불 값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직원은 욕실은 몇시에 쓸거냐고 물어봤다. 욕실은 하나 밖에 없었고, 일본 드라마에 보면 나오는 그 작은 탕에 몸을 담구는 것 같았다. 욕실 밖에는 화이트보드가 있어서 시간과 사람 이름이 적혀 있다. 


방은 다다미로 된 방이었고 TV가 있었다. 방 온도 조절도 내가 할 수 있었다. 두꺼운 잠바를 입고 보일러를 틀으니 춥지 않았다. 긴 열차 시간의 여독이 새로운 장소에서 오는 흥분을 눌렀다. 잠은 깨지 않고 잘 잤다.


식당이 있었다. 토스트와 찐계란이 무한으로 제공이 되는 곳. 나는 하루에 한 끼 먹기도 빠듯할 정도로 돈이 없었고, 먹더라도 마트에서 세일로 파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이 전부였다. 토스트와 계란을 먹고 있는데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친절하던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밖에는 눈보라가 불고, 이제껏 보지 못한 풍경과 상황이 창문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행하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 특별함이 나를 더 흥분 시켰다.


사회인이 된 지금 일본 여행을 몇번 갔고 그때의 기분을 다시 떠올리려 열차 패스권을 사서 규슈를 돌아다녔다. 근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하코다테에서 느꼈던 기분을 느낄 순 없었다.


나이가 어릴 때 하는 방랑은 나중 삶에 큰 힘이 된다. 

단지 7일정도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여행내내 몸이 부르르 떨릴만한 전율을 하고, 지금도 그 감정을 품고 살고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게 되면 뭐든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전에 장기 여행을 홀로 갔다 온건 너무나 잘한 일이다.


하코다테의 이름을 까먹은 그 호텔은 아직 있을까? 그떄의 그 곳에 가면 잃었던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리산 오케스트라의 정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