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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Jan 16. 2020

홈 리스본 호스텔

낯선 곳. 거긴 언제나 INN 있습니다.

대지를 돌아다니며 불과 하루 이틀 눈을 부쳤던 그곳.

INN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니 개안나?



때는 내 나이 11살 때 나도 모르는 사이 풀썩하고 대중목욕탕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걸 본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해줬다.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밖으로 걸어 나오다 현기증이 난 것이다. 목욕탕 가기 전 4시간 동안 나는 게임에 몰입했고, 쓰러져 버린 것이다.


대항해시대 2. 내가 매달렸던 게임의 정체다.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으로 배를 타고 유물을 탐험하거나, 무역으로 돈을 벌거나 해적을 무찌르는 해양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 중에 나는 피에트로 콘티라는 이탈리아 모험가로 플레이를 주로 했다. 다른 주인공들은 전투가 목적이거나 교역이 목적이었는데 내가 플레이하던 콘티는 모험이 목적인 캐릭터였다. 항상 나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나의 베이스캠프로 두고 게임을 진행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뒤로 20여 년이 지나고 내가 실제로 리스본으로 가게 될 줄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에 리스본에 도착을 했다. 

미리 예약을 한 홈 리스본 호스텔에 들어가니 여행객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는 여자 스텝이 설명하는 이야기를 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짐을 숙소에 보관하고는 길을 나섰다.


대항해시대 2의 도시 리스본에 온 것이다. 첫 번째로 코메르 시우 광장으로 갔다. 그리고 들고 간 mp3로 대항해시대 2의 OST를 플레이했다. 마치 피에르토 콘티가 된 것처럼.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렘 탑을 보러 트램을 탔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들어갔는데 별게 없었다. 근처에 있는 벨렘 탑도 해변에 있는 작은 건물 수준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해양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항해시대 때의 유물들을 쓱 둘러보고 나왔다. 



왜 이렇게 심드렁 해진 걸까. 그건 내가 유럽에 도착한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몇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마드리드의 새벽과 톨레도의 아침을 거쳐 불편한기 그지없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리스본에 왔는데, 리스본은 너무 뜨거웠다. 여행 하기에 정말 더운 날씨였기 때문이다.



홈 리스본 호스텔에 돌아가 방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곳에는 많은 서양 여행객들이 머물렀으나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이었다. 나는 언덕과 바다가 있는 풍경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리스본의 하이라이트는 언덕길 사이사이에 있었다. 뾰족뾰족한 길을 올라가다 보니 리스본의 상징인 28번 트램과 대성당이 보였다. 그리고 중간중간 파두를 연주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혼자 들어갈까? 생각해봤지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혼자 파두를 연주하는 청년이 보인다. 그곳에서 커플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난간에 걸터앉아 와인을 마신다. 나는 청년 주위를 머뭇거리며 사진을 몇 컷 찍고는 돈을 주고 갔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낙서들이 그려져 있고, 어둑어둑해진 거리에 내가 혼자 있다. 이젠 어딜 가야 할까. 두리번거리며. 여기에 있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언덕길을 내려와 숙소로 가는 도중 스카밴드의 연주를 보았고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 나도 스카밴드의 연주자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넓은 광장에서는 웃통을 벗은 가난한 댄서들이 행인들 앞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었고,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지만 서글픈 풍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의 숙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현지인이라면 오지 않을 비싼 식당에 앉아 안주를 하나 시키고 맥주를 마셨다. 행인들이 내 주위를 오가는 노천 식당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포르투에 가고, 그리고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을 걷게 된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까. 그건 모르겠고, 거의 10년 만에 맞이한 축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정말 많은걸 얻게 된 한 시기의 앞엔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있었고 홈 리스본 호스텔은 나를 재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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