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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Jan 20. 2020

엄마와 대마도와 카미소

대마도 카미소 호텔

낯선 곳. 거긴 언제나 INN 있습니다.

대지를 돌아다니며 불과 하루 이틀 눈을 부쳤던 그곳.

INN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여행지에 가서 회사 일로 골머리를 앓아본 적 있는가.


대마도에 가기 하루 전, 회사에서 내가 아주 작은 사고를 친 걸 발견했다. 결국 그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결되었지만, 당시 사고가 난 걸 알았을 때는 아찔했다. 거래처에게 통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거래처의 답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고 설 연휴 동안 나는 종결되지 않은 그 일만을 생각하며 끙끙 앓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때 나는 엄마와 단둘이 1박 2일로 대마도를 갔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 히타카츠에 도착했다. 같이 배를 타고 온 한국인 손님들은 민박이나 낚시 회사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남은 엄마와 나. 무계획이었다. 선착장에 덩그러니 있던 엄마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주위를 돌아다녔다.


거리는 60년대, 70년대에서 멈춰 있었다. 오지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상점가는 허름했다. 이곳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출출했다.

맛집이라는 야에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를 반기는 느낌이 아니었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오래된 만화책들이 꽂혀 있었던 것 같기도. 우리나라로 치면 김밥천국이었다. 수많은 메뉴들이 있었고 적당한 걸 시켜 먹었다. 맛은 없었다.


이제 뭐하지 엄마? 엄마가 나를 원망하는 느낌이다. 정한 곳 없이 왔기 때문이다. 근처에 친구야라는 카페에 가서 버거를 하나 먹고 택시를 불렀다. 미우다 해변에 갔다.


해변가를 거닐었다. 엄마는 연신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 생각이 났다.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그 일만 없었다면 가슴이 뻥 하고 뚫릴 정도의 경치인데. 

미우다 해변 옆에는 나기사노유 온천이 있었다. 엄마와 한 시간 뒤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는 천천히 씻고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가 나오질 않는다. 점점 걱정이 된다. 혹시 탕 안에서 쓰러지신 걸까? 에이 설마. 이젠 슬슬 스탭을 불러서 엄마를 불러와야겠다 생각할 무렵. (2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다) 엄마가 나왔다. 물이 너무 좋아서 오래 있었다며.


택시를 불러 항구 근처 스시 집에 갔다. 아들과 엄마가 하는 가게 같았다. 아주머니는 친절하셨다. 스시는 맛있었다.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뉴스에 대마도가 나왔는데, 이 스시집에 가는 장면이 나왔다. 아주머니가 나와서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하셨다. 얼굴이 기억났다. 약간 두꺼비상이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 택시를 불러 카미소 호텔에 갔다. 대마도에 얼마 없는 호텔이다.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않아 보이는 젊은 남자 직원이 우리를 맞이해주었고, 열쇠를 받아 올라간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일본 호텔에 오면 누워서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잠을 잤다.

저 멀리서 동이 터오고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암석의 풍경. 하지만 그 풍경 조차 회사에서 있었던 그 일을 잊게 해주지는 않았다. 계속 가슴이 답답했다. 또 엄마와 언제 올 일이 있을까. 이 좋은 날. 그럼에도 가슴은 답답했다.

무엇을 비십니까. 엄니.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투숙객이 얼마 없었던 모양이다. 아주 간소한 상차림. 쥐치로 보이는 생선이 있다. 맛없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식당 여 스텝이 한국인 같았다. 이곳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호텔 연수를 왔거나. 하지만 뭔가를 배우기에 이곳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유유자적 쉬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있을 곳은 분명 아니었다. 그 혈기를 풀만한 공간이 이곳엔 없었다. 자연도 좋고 다 좋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곳에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리가 죽어버린 도시에선 사람도 죽어버린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택시를 불러 2시간 동안 투어를 하고 근처 마트에 들러 레드향인지 뭔지를 맛있게 까먹고 이상한 빵집에 들러 집에 가져갈 기념품을 샀다. 2시간 동안 택시 운전을 하던 형과는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라인 친구가 되어 한동안 라인으로도 이야기를 나눴다. 도쿄에서 살았는데 얼마 전에 귀향을 했다며. 약간… 호스트 느낌이 나는 형이었다. 가부키쵸에서 많이 보던.. 그 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귀향을 하려면 빨리 하라고 그래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그나저나 대마도는 괜찮은 걸까. 불은 도쿄에 사는 아베가 질러 놓고 직격탄은 대마도가 맞고 있으니. 엄마와 내가 묵던 카미소 호텔은 아직 그래도 영업 중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택시 운전을 하던 형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잘 살겠지. 


참, 오기 전 터뜨렸던 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끝났다. 타이밍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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