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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XO Mar 24. 2020

코로나 왕국의 라푼젤

Ava max - kings & Queens

그러니까 동화 밖에 인간이 있더라는 이야기다. 20대 성인 여성의 관점에서, 이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으며 복잡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목을 조이더라는. 누군들 삶이 특별히 고단하지 않겠냐마는, 그 어디에도 공주는 없는데 군주만 즐비하더란 말이다.
 
참고로 라푼젤은 정말 ‘코로나’ 왕국 출신이다. 우연히 이름이 겹치는 덕에 라푼젤이 탑 안에 갇혀 있던 게 사실은 자가격리 중이었던 거라는, 다소 시시껄렁한 밈(meme)이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피식 웃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서 부지런을 떨며 청소하고 그림을 그리던 눈 큰 캐릭터를 떠올린다. 내 처지도 딱히 다를 바 없다. 거진 삼주 동안 방 안에 박혀 무기력과 분노에 시달렸으니 늘 끈질기게 희망차던 라푼젤보다는 조금 더 우울한 상황이겠다.
 
동화 밖으로 나간 공주들은 어디로 사라질까?


나는 내가 발 디딜 곳에 대해 줄곧 생각해오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밉고 싫고 진저리가 났던 탓이다. 좀처럼 무뎌지지도 않을 만큼 자극적인 뉴스와 날카로운 언쟁들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방랑벽을 이기지 못해 떠났고, 지금 머무르는 이 곳의 평화로운 풍경과 순박한 사람들에 정을 주려던 참이었다. 여기는 성평등 의식이 그래도 조금은 더 진보적이니, 여성의 능력을 보다 높이 사주는 환경이리라 여겼다. 나는 내 미래에 얼마간 희망을 품었으며, 열심히 도전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해외에 거주하는 젊은 동양인 여성’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결코 ‘떠나서’ 생각할 수 없더라는 사실이다. 나야 거울 속 매일 보던 얼굴에서 내 피부색깔과 그로 인한 한계를 새삼 되새기지는 않지만, 당장 길거리만 나가도 사람들 눈에 나는 그저,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바이러스를 품고 돌아다니는 노란 얼굴의 외국인’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명분 아래 결국은 최약자를 향한 혐오가 정당화된다. 어느덧 나는 당연한 것들에 감사해야 했다. 들어간 식당에서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포장해가면서도 친절한 직원을 만나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마주친 시선에 미소로 답해오는 사람들에겐 아이구야, 황송하기까지 하다. 이제껏 누리던 것들이 운이 좋아서였음을 깨달았을 때, 어쩌면 개개인이 베풀어주는 호의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게 아닌가 되짚어 보게 되었을 때,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맞아서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게 나일 수도 있었기에, 왜 우리의 생존은 이렇게 불안에 휘감겨야만 하냐고 고개를 쳐들던 억울함.
 

테일러스위프트 The Man lyric video 중 한 컷


낯설 리가 없었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를 배워가면서 그야말로 눈알을 꺼내 닦아서 다시 끼우는 만큼의 충격을 받았던 나날이 떠오른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 수 없던 시절에 나는 한국에 있었고, 그랬기에 그 땅만 벗어나면 어디든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글쎄, 뛰쳐나갔더니 낭떠러지였던 거다. 계곡을 건너며 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광대 신세였다. 묘하게 따라붙는 시선들은 친절을 가장해 나를 관찰했다. 말이 없으면 샤이한 아시안이 되는 거였고 말이 많으면 특이한 아시안이 되는 게 차이였다. 출신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내 입으로 까내릴수록 통쾌한 고발보다는 제 살 깎아먹는 재롱에 가까워졌다. 외부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 제일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내부에 있는 우리들 스스로였던 것이다.
 
“돌아가기 위해 떠나온 거야.” 어느 날 대만인 친구가 내게 해줬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언젠가 다시 돌아서겠노라고, 지긋하게 오래된 동화를 내 손으로 뜯어고치고 말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요구라도 할 수 있는 정부, 체계를 갖춘 행정 시스템, 깊은 아웃풋과 인풋이 가능한 모국어, 공감하고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킹,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이 당연하게 나눌 수 있는 전제들.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내가 박차고 나온 우물 속에. 자글자글 끓던 물 속에. 아, 그 치열함에 들뜨는 나는 영락없이 전사였다. 꼼짝 못 하다 죽어나갈 게 아니라, 우렁차게 합창하며 멀리 보고 높이 도약할 개구리였다. 그렇지, 땅이든 물이든 자유로이 오갈, 적응력이 뛰어난 수륙양용의 비기였다. 내게는 궁전이 아니라 전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N번방 이슈가 터졌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대규모의 시위나 파업 등은 불가능해졌지만, 청원과 공론화, 글로벌 공조 요청 등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 특히 뭘 당해왔는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를 고발하고 단죄하기 위해 무엇을 해나가고 있는지 세계가 지켜보고 힘을 보탤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의 도전들, 이끌어낸 변화들, 목표와 가능성에 관해 더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불행과 좌절 속에서 구원자만을 기다리는 역할로 여성을 소비하게 두어선 안 된다. 소녀들은 결코 영원히 어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동화 속에서 악은 꽤나 비장하지만, 현실 속에서 악이란 더없이 초라하고 찌질할 뿐이다. 이제 우리가 능멸할 차례이다. 누가 나약한가? 반항하지 못할 것 같은 동양인을 골라 모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 어린 여성의 신상을 움켜쥐고 협박하며 성적 착취를 일삼아온 인간들. 타인을 짓밟는 각종 가학적 행위에 기대어 가까스로 제 존재를 확인하지만 정작 굶주린 하이에나 앞에선 옴짝달싹도 못할 자칭 타칭 사이코패스들. 진짜로 하찮은 게 누굴까? 성매매, 불법 촬영, 딥 페이크, 스너프 필름, 섹스돌,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자극을 찾아 허덕이면서 사생활이니 본능이니 갖은 핑계를 늘어놓는 꼴은 그저 우습다. 예술도 자본주의도 그 따위 모순을 허락한 적 없다. 불투명하고 저열한 자들을 사냥하러 가자. 남의 미래는 업신여기고서 제 앞날만큼은 사수하고 싶다니, 응징이 마땅하다.

유교걸들 힘내자. (MMTG 팬이어서 넣은 사진)

결국 세계의 미래는 대한민국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지금, 여기서부터다. 효율적으로 가능한 빠르게 최선의 결과를 원하는 것, 그렇지 못할 때엔 들고 일어서 불평하고 비판하는 게 당연하다는 민족의식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눈치 보고 남 신경 쓰는 문화 덕에 대세에 발맞춰가며 도태되지 않으려는 경쟁심리 역시 특장점이기도 하다. 때론 지지부진한 현실에 환멸이 나더라도, 여성들은 어디로도 물러나지 않고 어디로든 진출하여 버티고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뭉치자, 시련에 단련된 우리의 돌팔매질은 성벽을 지켜낼 전설적인 역사가 될 테니. 아랫세대는 우리가 들려주는 전혀 다른 동화들을 듣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쏘냐, 정상을 향해 기어올라 군주의 목을 치면 될 일인데.


성 안에 갇힌 공주들이 어디로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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