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김여사를 보며, 가족이 몇인데 왜 보호자도 없이 혼자 검사를 받고 혼자 결과를 들으러 다니냐며,
한참을 한바탕 징징거렸다.
김여사는 그후로, 더 의기소침해졌고.
손맛좋은 자신의 요리 실력을 믿지 못하고,
반찬마다 잘 만들고 잘 버무려 놓고도,
간을 못마추겠다며, 물러섰다.
뭐든 "난 못해""내가 어떻게 해"라고 했고,
스스로를 밥만 축내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집안의 허드렛을 찾아 분주했다.
'하아.......엄마 왜 그래......ㅠㅜ'
'다음 진료일엔 함께 따라가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기다리던 중,
김여사는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초기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을 하시겠냐는 연락이었고.
울엄마김여사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난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했다. 어떤 임상이고, 어떤 약이고, 임상기간도 얼마나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진료과에 메모를 남겼더니, 젊은 전공의가 전화를 했다.
"제약사는요?" "그래서 투약되는 약은요?" "임상기간은요?" "환자나 보호자의 뜻에 따라,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는 거죠?""부작용은요?"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저희 엄마 상태가 어떤 거죠? 알츠하이머 초기인가요? 초기라면 어느정도죠?"
- 오~~아니에요.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초기가 아니라, 경도인지장애 정도에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분은이번 임상대상이 될 수 없어요. 경미한 인지장애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이에요....최종 동의하시면 다시 정확한 인지기능 검사를 거친 후에 선발하게 되는 거라, 임상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알츠하이머가 아니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
생방송 때문에 시간을 뺄 수 없었던 나는,
대학입학을 기다리던 2호를 외할머니의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보냈다.
1호를 보냈으면 했지만, 하필 중요한 시험이 있었다.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고 출근을 했는데, 생방송 중에 2호가 전화를 했다.
"왜? 할머니 괜찮으셔?"
"네. 할머니는 검사중이시고, 의사선생님이 저더러 종이 몇장을 주시면서 체크하라는데, 어떻게 체크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있는 그대로 체크하면 되지. 모르긴 뭘 몰라. 사진찍어서 보내봐"
생방송 사이에 잠시 짬이나, 2호가 보낸 사진을 보니,
환자가 과거에 비해 인지기능이 떨어졌는지를 묻는 종이 몇장이었다.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예'라고 체크를 해야하는데...
언뜻봐도 울엄마김여사의 증상엔 해당되는 문항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런데!!!!!
'탈억제' 문항에서 2호는 당당하게 '예'라고 표시했다.
충독적으로 행동합니까?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에게 잘 아는 것처럼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합니까?
예! (빈도 1 2 3 4 / 심한정도 1 2 3 4)
"야. 왜 '탈억제'를 '예'라고 한거야?"
"엄마,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합니까? 라잖아요. 할머니 제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시거든요!!"
"야 좌식아. 그건 니가 말을 안들으니까 그러는 거고!!"
"그래도 기분 상하게 하는 건 맞잖아요"
"이게 니 상담자료냐?"
그게 끝이 아니었다.
'초조/ 공격성'
고집이 세졌습니까? 또는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할 경우, 저항할 때가 있습니까?
예!! (빈도 2/심한정도1)
"이건 또 왜 '예'야?"
"할머니 고집 세시잖아요"
"그건 원래 DNA가 그런거고. 과거에 비해 고집이 세졌냐고 묻잖아"
"세졌다니깐요? 예전엔 치킨 시켜서 드시라고 하면, 두번정도 사양하시다가 마지못한 척 드셨는데, 지금은 세번은 권해야지 드신다니깐요. 그리고, 제가 설거지 하겠다고 하면. 저리 비키라고 당신이 하시겠다고 저항하신다고요!!!!!"
"그건 좌식아. 니가 설거지를 드럽게 하고, 설거지하다 그릇을 깨뜨려먹으니까 그런 거고. 넌 이게 무슨 MBTI 검산줄 아니? 아오~~~진짜...이걸 보호자라고 보낸 내가 xxx이지"
비록 서툴고, 문해력은 떨어졌지만,
2호는 병원에서 6시간 넘게 할머니의 충실한 보호자 역할을 해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울엄마김여사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함께 밝아졌다.
"얘!! 나 떨어졌어. 임상 대상에서"
"왜?"
"경도인지장애도 없고, 넘 말짱하고 똑똑해서, 난 임상대상이 안된대.
아휴~~괜히 종일 검사하느라 애만 먹었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울엄마 김여사는 행복해보였다.
"그나저나 우리 2호 오늘 정말 고생 많이했어. 우리 애들 하나같이 참 착하지 뭐냐. 넌 안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