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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Aug 07. 2024

손도 까딱하지 않는 딸년입니다

엄마의 치매를 준비하기로 했다.

모든 건,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두세번 성당에 가고, 그 성당에서 형님아우하는 자매님들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던 엄마였다.

하지만, 코로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단절이 돼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와 백신의 끝에 남은 후유증으로,

엄마는 예전같지 않았고,

이제 김여사에게 가사일은 더이상

누워서 떡먹기거나 땅짚고 헤엄치기가 아니었다.

잊을만 하면 '손도 까딱하지 않는 딸년'이라고 했던 나였지만,(설마 그랬을까...)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면서,

난 바깥일과 안일을 병행하는 애다섯 열혈 워킹맘으로 변신 중이었다.


코로나의 집합금지가 풀리고도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엄마는

나의 성화로,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됐고

주변의 끈질긴 회유로 주말 미사외에, 평일 일주일에 한번 성당 시니어아카데미도 나가게 됐다.

30년 넘게 다닌 성당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가족처럼 친한 성당자매들과 꽤 즐겁게 어울리면서,

아카데미가 는 날은 함께 차도 마시고 장도 보면서 즐거워하셨다. 유일한 운동의 날이었고, 친교의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시니어아카데미에, 한의사가 와서 강연을 했는데,

엄마는 그 강연이 꽤 유익하고 들을만 했다고 했다.

또 무엇을 했냐고 물으니, 성가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강의도 듣고 밥도 먹었다며 즐거워하시길레 난

"시니어아카데미를 매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엄마가 나가서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지"

그랬더니 엄마는

그러면 우리(성당어르신들)야 좋지만, 봉사하는 사람들이 고생이라며, 일주일에 한번도 과분하다고 하셨다.

그런 담소를 나누다 저녁시간이 됐고.

밤방송 출근하는 날이라,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할머니를 모시고 나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3호가 "엄마, 할머니 진지 안드신데요. 근데 화가 나신거 같아요"

뜬금없는 얘기였다. 화가났다고? 갑자기?


우리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한번 골이나면 사람 피를 말려 죽이는 재주가 있어서,

일단 곡기를 끊고(물론 자식들의 곡기도 함께 끊는다), 몇날몇일을 누워있다가, 못된바이러스처럼

역정의 바이러스를 필터없이 마구 퍼뜨린다. 돌아가신 아빠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덩달아 우리까지 죄인이 되고, 나와 오빠를 향해, 입을 꾹 다물거나 "니네도 다 똑같다"며 막말을 쏟아냈다.

(그만큼 참기도 많이 참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성심성의를 다해, 화를 풀어주지 않으면 노여움이 몇달 몇년도 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그래서 엄마의 '삐침' 내게 유일한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엄마방으로 갔다.

"밥 먹어 엄마"

"안먹엇"

"밥을 왜 안먹어"

"됐어 이년아 너나 처먹어"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그리고, 오랜 실랑이가 오갔다. 난 '대체 왜 그러냐'고 '말을 하라'며 언성을 높였고,

엄마는 '말하지 않겠노라'며, '너랑 말도 하기 싫다'며 볼살 실룩거리며 이를 갈았다.

아이들과 남편이 말렸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악을 썼다.

왜 그러냐고, 언제까지 이럴거냐고, 말을 하라고, 엄마가 이러는 거 미치고 돌겠다고...

엄마는 맞받아서, "그래 이년아 미쳐라 돌아라. 말 안할거다"

난 더 악을 악을 썼다. 말하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뭘 잘못했는지 말하라고..........


한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는 악에 바쳐 이 앙물고 말을 꺼냈다.

"너 아까 뭐랬어?!!! 성당 시니어아카데미 일주일에 한번 말고, 매일했으면 좋겠다고 했어 안했어. 그거 무슨 의미야. 나한테 제발 나가라는 소리 아니얏?"

어이가 없었다

"엄마 미쳤어?"

"그래 미쳤다. 니가 날 부담스러워 하는 거 같애. 그래서, 니가 일부러 밥하고 설거지하고. 나 필요없다고 나 보란듯이 하는 거 아냣?!!"

쓸쓸한 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웬만하면 밥하고 설거지 한다 요즘. 엄마 힘들다며? 그래서, 내가 아무리 바빠도 밤잠을 줄여서라도 내가 하려고 한다 왜. 엄마 며칠전에 설거지 한번 하고, 나한테 뭐라고 했어? '손도 까딱 안하는 년'이라고 했어? 안했어? 그리고 뭐?!! 노인대학 매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엄마가 이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가 돌려서 했다고? 엄만 날 그렇게 몰라?!! 내가 그런 년이야? 내가 그렇게 돌려 말하는 사람이야? 이제와서 엄마는 쓸모없으니, 나갔으면 좋겠다는 쌩양아치 형편없는 인간말종이야?!! 내가?!! 내가 그런 년이야? 내가??!! 어디서 사람을 개떡같은 쓰레기를 만들어?!! 잘못했다고 해!! 당장!!"

그러고도 한창을 퍼부었다. 온힘을 다해 악을 쓰고, 온힘을 다해 발악하고, 온힘이 다빠져나가도록 억울해하는 날 보며...그제서야 엄마는 머쓱해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나서 엄마는 저녁식사를 했고, 입맛 뚝 떨어진 나는 빈속으로 출근을 했다.


운전을 하며 방송국으로 가는데, 허탈했다.  엄마가 오해를 풀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빨리 풀려서 다행이다....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났다. 어이가 없고,  내가 가여워졌다.

그리고 그런 나보다 엄마가 더 가여워졌다. 기세등등하던 우리엄마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아직은 내 도움이 필요한 다섯아이들과, 그리고 점점 애가 돼가고 있는 엄마...

난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

엄마의 (뇌건강센터)주치의를 만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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