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 관계에서 가끔 지칠 때가 있다. 좀 친숙하다고 생각이 들면, 함부로 경계를 흔들거나 허물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될 때, 피로도가 확 올라간다. 그동안의 친밀함을 생각하면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편해서 말이다.
가족 간에, 친구들 속에서, 직장에서도, 우리는 관계를 잘 만들어 가고 싶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분명 난 잘해주었는데, 잘해주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과하게 더 밀고 들어오는 거지? 싶은 생각에 상대가 무례하게 보이기도 하고, 내가 왠지 만만해 보여서 저 사람이 저러는 건가 싶은 피해의식까지 들고일어난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요구에 맞춰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왠지 관계가 상하게 될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다 수용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용한 이후,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말로 형용하자니, 내가 바보스러워진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다. 하고 싶지 않았는데, 왜 내가 그걸 받아들였나 싶어서 하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나에게 그 요구를 한 사람에 대해서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그 부탁을 했을 때, 난 거절하지 못해서 내 마음을 내가 불편하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절하게 되면 왠지 관계가 안 좋아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불편해도 그냥저냥 나를 달래면서 수용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마음속에 거절하지 못한 나에게는 화가 나고, 그러한 부탁을 한 상대방은 나에게 빌런이 되어 있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상황은 지속적으로 짜증이 나는, 무엇하나 좋을 것 없는 이상한 나라가 만들어진다.
그런 상황을 좀 진정시키기 위해서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불쌍한 합리화'를 통해 그 속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서 나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그 위안은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위태로운 종이배처럼 힘이 없었다.
'좋다'는 말, '괜찮아'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사용한다. 긍정적인 표현을 미덕이라고 교육받아왔고, 그렇지 않을 경우, 까다롭거나 기가 세다는 인상을 줄까 봐 자신의 기호를 숨긴다. 이런 히스토리가 쌓이고 쌓이면, 내 안의 마음은 계속 진짜 소리를 무시당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답답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봐주지 않는 주인에게 화가 나게 된다. 쉽게 말해 나 자신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내가 상대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다음 상황은 상대가 결정하는 것인데 나는 왜 그 뒤까지 내가 책임지려 했을까?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려고 내가 모든 걸 다 맞출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럼 누가 나를 맞춰주는 걸까? 나부터 나의 필요를 잘 봐주지 못하는데, 눈치 보는 나의 마음을 누가 봐주는 건 없는 듯하다. 정작 보아야 할 내 마음을 봐주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다 맞춰주는 것 아니었을까?
내가 모든 부탁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여력이 될 때 기꺼이 돕고, 그렇지 못할 땐 솔직히 거절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관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연습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조건 거절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다면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내 부탁을 거절하면 순식간에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의 친밀한 관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한 번의 거절로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은 참 딱하게 보인다.
거절이라는 것은 관계의 거리를 어느 정도 규정지어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거절을 서로 해봐야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파악이 되고, 나에게 인간관계의 옥석이 조금이라도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 어쩔 수 없으면 거절이라는 것도 할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을 때는 기꺼이 도와주면 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관계를 남겨야 한다. 거절했다고 졸지에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들어 버리는 관계는 이어갈 필요가 없고,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다음을 위해 손을 놓지 않는 관계를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왜 난 이렇게 허탈할까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퍼주기만 하고, 상대는 나에게 조금 주었을 때이다. 그 균형이 틀어졌을 때, 내 안의 나는 내가 맘에 안 들어진다. 관계에서 너무 잘하려고 했기에 상대는 이미 그 기준에 맞춰서 나에게 또 요구할 경우, 항상 그 기준을 맞추려고 하고 거절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내가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미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상대에게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지만, 마음보다 앞서서 상대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계속할 수 있는 것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인생은 이벤트가 아니기에 그저 일상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내가 못하겠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을 애써 하려고 하지 말자.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나에게 맞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맞추느라 애쓴 나의 마음에게 말을 건네본다.
- 넌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맞추며 살아왔느냐고...
-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고, 누구였냐고...
- 그렇게 살아갈 때, 나의 마음속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냐고...
내 안의 나는 말한다.
-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평화로워질 것 같아서, 그냥 내가 하기로 했어. 내 마음이 멍드는 건 몰랐거든.
-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내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한다고 했지만, 집에 와서 속상했어. 그런데 누구에게도 말도 못 했어. 이미 내가 내 입으로 뱉은 말이라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 예전에도 해 줬는데, 갑자기 거절하면 싸해질까 봐 했는데, 후회돼. 그렇다고 다시 돌리지 못하겠어. 이상한 사람 되는 거잖아.
- 왠지 내가 거절하면 안 될 거 같은 상황, 상대가 그동안의 친밀함으로 밀고 들어와서 나를 묶어 버릴 때,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어. 그래서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이불 킥하게 되더라고.
등등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이 거절이라면 거절도 예의 있으면서 당당하게, 그 말이 수용이라면 수용도 따스하면서도 당당하게. 그렇게 되지 못한 관계에 있어서는 더 이상 함께 가지 않는 것으로, 그 시간에 오히려 내 생애 남은 시간을 건강한 관계와 함께 하기로 집중할 것을 다짐해 본다.
그동안 내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자. 토닥여주고, 위로해 주자. 살아내느라 애썼고, 나름 잘 살아내려고 고생했다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게 해 주자. 웃으면서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