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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Dec 29. 2018

여행의 마무리는  우리 셋 만의 시간으로

겨울 제주도 여행 04

둘째 날 밤늦게 W의 아빠가 제주도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남편은 회사 때문에 아예 짬을 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W의 가족은 아빠가 늦게 합류해 이틀 더 제주도 여행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밤에는 서로 아이들을 재우느라 잠깐 얼굴만 보고, 아침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수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나름 경치도 즐기고 푹 쉬기도한 린

이 아빠는 아침부터 분주한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엄마 혼자서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까지 온 것도 놀라운데, 율의 아침밥을 먹이고 린의 수유를 끝낸 뒤 나도 간단히 밥을 챙겨 먹고 두 아이의 외출복을 갈아입히는 것을 기계처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다닥 캐리어 짐 싸기를 끝낸 다음, 거실에서 W네 가족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혼자 아이들을 챙겨야 하다 보니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조금씩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W아빠가 그 부분까지는 미처 캐치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율이 엄마 정말 대단하시네요." 하는 W아빠의 칭찬에 나는 뭔가 부끄러워져 "아...제가 생활력이...너무 강하죠?" 하며 웃어 보였다. 집에서 가끔 남편에게 '여보, 이렇게 와이프가 힘세고 생활력이 강하다니...아무리 생각해도 참 장가 잘 갔어!' 하고 농담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공항행 셔틀버스에  탑승해야 했기에, W네 가족과 방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나왔다. 함께 하기로 했던 체크아웃과 마무리 방 정리는 W네가 해주기로 했다.  

이제부터 집까지 가는 여정은 나와 나에게 매달려 안긴 아이,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 이렇게 오직 셋만의 시간이 될 터였다. 소-제주공항-김포공항-집. 단순한 여정이었지만 집에 다다를 때까지 무탈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긴장감을 놓을 틈 없이 두 번의 위기 상황이 왔다.

로비에서 셔틀 버스를 기다리며. 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몇분 후 일어날 위기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중 첫 번째는 방에서 나온 지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공항 셔틀버스 출발 10분 전쯤 출발 장소인 메인 로비 도착해서 로비 구경도 하고 소파에도 앉아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잘 놀던 아들이 "엄마 나 응가 마려워."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시간은 3분이 남았고, 건너편 리조트 입구에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뛰자!" 하고 아이의 손을 덥석 잡고 일단 화장실로 뛰었다. 아까 로비 구경을 하면서 화장실 위치를 파악해 두었던 것이 이리도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율도 긴박한 상황을 이해해서인지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풍덩'하고 쾌변으로 화답해주었다. 손까지 후다닥 씻고 다시 밖으로 달려 나오니 출발 1분전...캐리어를 버스 짐칸에 던지듯 넣고 얼른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3분 내에 미션 클리어! 역시 위기 상황에서는 숨어있던 괴력이 나타나는 것 같다.


제주 공항셔틀버스 안에서 율은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 정말이지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출발 직전 급작스럽게 에너지 소모를 한차례 했던지라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아들이 알아줄 리 없었다. 그나마 린이라도 자 주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제주 공항 도착 전에 모든 에너지가 방전될 뻔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과자도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김포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맞이했다. 2박 3일 내내 순하기만 했던 린이 택시 안에서 갑자기 대성통곡을 시작한 것이다. 올림픽대로가 조금 막히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심하게 울자 나도 기사님도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이래저래 달래어 보아도 큰 효과가 없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아이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아차 싶었다. 히터가 나오는 택시 안에서 옷을 너무 두껍게 입힌 채로 아기띠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추운 것만 생각했지 실내에서 아이의 컨디션까지 챙기지 못했다. 좁은 택시 안에서 내 잠바를 벗고 아기띠를 풀고 아이 옷을 벗기고 다시 아기띠로 안고...한바탕 난리 끝에 겨우 린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택시에 벗어던진 옷들을 다시 주섬주섬 챙기고서야 무사히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다녀온 게 여행인가? 싶기도 하다. 확실히 내가 기존에 해왔던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하지만 2박 3일간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어도, 아이들과 보낸 시간 속에서 충분히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율의 시선에서 보자면 공항버스와 비행기를 타보고, 새로운 장소에서 친구와 신나게 산책하고 아쿠아리움도 다녀오고, 집이 아닌 숙소에서 잠도 자는..완벽한 여행이었다.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나와 함께 어디론가 떠났을 때 나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같이 간 아이도 충분히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다음에 다시 떠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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