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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04. 2019

Hello 런던! Goodbye 아이폰!

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3

암스테르담에서부터의 짧은 비행을 끝내고 드디어 런던 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을 한 바퀴 둘러보고 런던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저녁 6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하루를 정말 알뜰하게 잘 사용한 느낌이었다.


캐리어에 유모차에 아기까지 있어 숙소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다. 숙소는 호텔보다는 집의 느낌이 나는 곳을 원했기에 에어비앤비에서 정했다. 지하철 Elephant & Castle역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의 17층이었는데, 런던의 풍경이 큰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원룸 형식의 스튜디였다. 한창 기어 다니고 잡고 서는 아이를 위해 카펫 바닥이 아닌 곳,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키친이 있는 곳, 혹시 모를 아이 옷 빨래를 위해 세탁기가 구비된 곳을 고려해 골랐다. 넓지는 않았지만 우리 셋이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

숙소 창가에 앉은 율과 뒤로 보이는 런던 시내의 모습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을 청했다. 암스테르담까지 들렀다 오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 셋은 기절한 듯 12~3시간 정도를 푹 자고 일어났다. 런던에서 맞은 첫 아침은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 않은 듯 추위가 남아있었고 살짝 흐려 보였다.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런던을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아예 유모차는 포기하고 힙시트로 율을 안은 채였다.

오늘의 코스는 런던탑(Tower of London)에서 타워 브리지를 지나 테이트 모던과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 죽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런던탑을 제외하고는 남동생과 여행했을 때 모두 한 번씩 가 보았던 곳이었지만,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템스강을 따라 쭉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 것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타워브리지에서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역시 테이트 모던. 많이 알려진 대로 옛 화력 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리뉴얼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곳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1층에 있는 큰 기념품 점에서 잡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예쁜 디자인의 펜이나 노트 같은 소소한 제품부터 전시된 작품들이 새겨진 엽서, 가방, 작품집까지! 사고 싶은 아이템들이 넘쳐났다. 여행 가서 물건 사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기념이니까'하는 핑계로 알록달록한 노트 한 권을 골랐다. 그리고 내부 전시를 간단히 관람한 후, 6층 카페로 올라가 큰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템스강과 런던 시내를 바라보았다. 잠시였지만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를 로맨틱한 분위기가 풍기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트 모던의 내외부의 모습

테이트 모던에서 나와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세인트  대성당이 나온다. 멀리서부터 성당의 지붕이 보였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며 성당의 크기를 가늠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에게 안기려 하지 않는 율을 거의 하루 종일 안고 다녔더니 다리와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성당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계단에 철퍼덕하고 앉아 쉬었다. 계단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사람 구경도 하고 있는데, 우리 바로 뒤편에 앉은 사람 중에 자꾸 눈이 마주치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갈색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의 중동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왜 이렇게 쳐다보지'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휴식을 끝내고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아름다운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웅장한 건물의 크기와 천장의 화려한 그림, 높다랗게 뻗은 기둥들까지, 이 모든 것의 조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분위기가 압도하는 곳이었다. 성당 돔 천장까지 남편이 걸어 올라갔다 오는 동안, 나는 율과 성당 안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 곳의 공기를 느꼈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그리고 성당 내부의 모습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들른 Tesco에서였다. 목표한 일정을 끝낸 후 차이나타운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물과 기저귀 등을 구입하기 위해 Tesco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을 보려고 찾기 시작한 내 휴대폰이 옷과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입고 있던 잠바 주머니에 넣은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리고 이후에 휴대폰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떨어뜨린 걸까 하고 생각하다 '혹시...?' 하고 아까 세인트 폴 대성당 앞 계단에서 계속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떠올랐다. 사실 물증은 없고 심증뿐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계속 붙어 다녔기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다면 우리 둘 중 하나는 알아챘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럽 여행 중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많이 들어 보았지만 내가 당사자가 된 것인가? 아이를 안고 다녀서 정신이 없다 보니 표적이 된 것이 아닌가? 마음속에서는 계속 의문이 일었지만 솔직히 소매치기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다 보니 이것도 현실감이 없었다. 소매치기가 맞든 나의 실수로 어디에 떨어뜨렸든, 여행  짐을 제대로 간수 못한 나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던 지난 몇 달간의 율의 사진과 동영상이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아이의 예쁜 모습을 다시 얻을 수가 없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이렇게 런던과 오랜만에 마주한 여행 첫째 날, 추억 가득한 아이폰과 예고도 없이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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