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memo #1. zero point .. flight tim
여행 떠나는 날이 되기까지, 참으로 숨이 넘어가게 시간을 쪼개썼다.
내가 정해놓은 여행을 떠나는 그 날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고, 내게는 떠나기 전 끝내 놓아야 할 숱한 일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결국, 떠나기 전 이삼일은 새벽까지 못다 끝내놓은 일들을 붙잡고, 졸리다, 자고 싶다, 하기 싫다 투정 부리며 꾸역꾸역 해치워내며 여행의 날들을 맞이했다.
여행 떠나는 날 전날 밤에도 아직 다 못한 그것들을 붙잡고 침대 맡에서 졸며 노트북을 쥐고 있다가 노트북을 밀어놓고 그냥 잠들었다. 어쩌려고 자는거니 나는.. 이런 생각을 밀어내고 잠 들어버렸다. 그래놓고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결국 공항에서 비행기 이륙전까지 조마조마하며 끝내고 가리라 그러리라 부들부들대며 마지막 포스팅을 끝냈다.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시간 후, 일어나 영화 두편을 내리 보고, 들고 온 책 한권을 펴 들었다.
Porto에서 한달을 살았던 세 여자의 자잘한 이야기를 읽으며, 줄 치며, 피식대며, 볼펜을 꺼내 들어 연신 적어가며. 문득, 갑자기, 너무 행복했다.
그냥 이렇게 책 하나 붙들고 한권을 다 읽고, 무언가 적고 싶다, 빨리 도착해서 낯선 그 곳들에서 설레이고 싶다, 와인 마시고 싶다, 맥주도 마셔야지, 포르토는 감자가 맛있다는구나, 이러면서 보내고 있던 그 순간이, 갑자기 너무나 좋았다.
나는 종종 여행을 떠나고, 종종 이런 비행을 많이 해왔는데, 오늘 갑자기 더 행복하고 간지럽게 좋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뭘 또 그런걸 생각씩이나. 그냥 너무 좋다 그러고 글을 써서 남기고 싶어졌다. 딱 그게 좋았다. 무언가 남기고 싶은 순간. 써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해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순간을 갖는 것.
지난 몇달을 또 그렇게 불태우며 살아왔다. 수십명의 사람들과 함께 커다란 일을 해냈다고 하지만, 때때로 외로웠고, 때때로 버거웠고, 때때로 힘겨웠다. 어느새 스무해씩이나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다보니, 외롭고, 버겁고, 힘겨워도 버텨내고 이겨내는 법을 좀 알게 되었고, 어떤 때 울고싶네 그러면 친구 앞에서 술 한잔하면서 투덜거리다 울기도 하고 그럴 수 있었는데, 요새는 왠지 우는 것도 잘 안되고, 그냥 단단해지려고만 애쓴것 같은 시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그 시간을 뒤로 해놓고, 갑자기 남기고 싶은 이 조각 시간을 마주하고 나니 이 여행에서 내가 마주할 그 조각들이 마냥 기다려진다.
골목 끝 담벼락 밑에 부서진 벽돌 조각이 궁금해지고, 오래된 빈티지 샵에서 만나게 될 지 모를 그 어떤 시간을 담은 작은 물건이 기다려지고, 독하고 달디 단 포르토 와인 한 잔의 맛이 기대되고, 그 어느 곳에서 마주하게 될 일몰의 시간이 두근거리고, 어느 강변의 아침과 진한 커피향을 상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