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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Oct 31. 2020

우리, 지금 아이슬란드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찬(正餐, 하루 중 가장 잘 먹는 식사)”

돌아온 그 날 저녁, 나는 다시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 있는 동안에도, 돌아오는 여정 내내,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계속 아이슬란드를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지금아이슬란드

인스타그램의 우리 여행의 해시태그를 적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그 곳에 있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 곳을 그리워하는 지금도 #우리지금아이슬란드 ing.


왜 아이슬란드였는가?

여행을 결심할 무렵,

나의 그녀(서현, 13세, 13년동안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나의 최고의 여행 동지)는 나에게 “왜 아이슬란드야?”를 물었다. 나의 아이슬란드에 대한 동경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 어느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다룬 매체의 콘텐츠를 본 적이 없는 나다. 7년전, 나의 젊은 친구들이 다녀온 아이슬란드가 담긴 영상 3분이 내가 본 모든 아이슬란드였다. 그 짧은 영상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터져오르던 게이시르도, 어마어마했던 자연의 풍광도 아니었다. 그저 뜨겁게 내 안에 남은 잔여물은 ‘그들이 있는 힘껏 감동하고 있다’였다. 끝도 없이 ‘우와’ 소리를 연신 지르며, 그저 커다랗게 웃어 제끼는 그들의 감동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 이후로, 하루하루 성장하는 나의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열살이 되었던 해, 우리 둘만의 ‘#우리끼리배낭여행’을 시작하며 매 여행의 전후로 아이슬란드를 생각했다. 포르투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나는 아이슬란드를 떠올렸다. 그 때마다, 아직 그녀가 어리니까, 둘이 가기 어렵지 않을까, 지금은 겨울이니까 등등의 이유로 머뭇거렸다.

그러다, “같이 가요” 하는 녀석들 덕에 문득 용기를 낸 우리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여.정. Journey, 점이 아닌 선을 그리는 여행

여행을 결심하면, 비행기와 머물 곳을 동시에 검색하며 여행의 경로를 그린다. 대강의 여정의 경로가 그려지면 비행기표를 끊는다. 그 다음부터는 각 목적지의 머물고 싶은 곳들을 거침없이 찾아 나선다. 항공권과 머물 곳을 모두 예약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게으르게 여행을 준비를 하는 편이다.

아이슬란드의 여정은, 일단 무조건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슬란드였다.

아이슬란드 여행 책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우리 여행의 시작과 끝을 표현했던 그 문장. 점이 아닌 선을 그리는 여행.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 “여.정”을 그대로 담아주는 그 문장 때문에 우리의 아이슬란드는 이전의 그 어떤 여행의 스타일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올리부원정대, 나의 크루들

‘같이 가요’ 한마디로 이 여행의 용기를 내게 해 주었던 나의 젊은 친구들.

울렁이는 마음 하나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겠다던 나.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그녀.

어디든 같이 가요! 하고 힘주어 이야기해 준 디지.

나의 아이슬란드의 모든 장면을 선사했던 서른이 되어 다시 가겠다던 로이.

‘갈래요!’ 발랄하게 기꺼이 동참해 준 나의 소울메이트, 숭.

문득, 조금 큰 쉼표를 선물해주고 싶었던 유빈 대표.

그리고 출발 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아이슬란드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던 쏭감독님까지.

이렇게 한명 한명 차례로 우리는 “함께”가는 아이슬란드의 여행을 시작했다.


소중한 루틴을 선물해 준 공간들

모든 여행에서 머물 곳은 중요하다. 낯선 곳에 우리를 두고, 처음 마주하는 여러 순간들을 오롯이 즐기고 나면 찾아 올 편안함, 포근함 그리고 안정된 느낌의 그것.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아침 열 시가 되어서야 해가 뜨고, 저녁 다섯 시만 되면 해가 진다.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우리가 경험한 어느 여행보다 긴 여행지였다.

게다가, 식비도 비쌀 뿐 아니라 중간중간 마을을 찾지 못하면 식사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하여, 더더욱 집에서의 시간이 중요했다.

 

2월의 겨울 아이슬란드라는 점. 그리고 7명 중, 6명은 모두 처음인 이 곳. 그리고 곳곳의 도로 폐쇄 등을 감안하여, 우리는 아이슬란드 서쪽과 남쪽의 일부로 여행의 루트를 잡았다.

 

레이캬비크(Reykjavik) – 서쪽으로 이동, 그룬다피요르드(Grundarfjörður) – 스나이펠스외쿨 국립 공원(Snæfellsjökull National Park) – 남쪽으로 이동, 검은 해변 근처 (Ölfus) – 골든 써클 (Golden Circle) – 셀라란드폭포(Seljalandsfoss) 근처 – 포스호텔 누파(Núpar) – 요쿠살론(Jökulsárlón) – 비크 (Vik) – 블루라군 – 레이캬비크(Reykjavik)

집 선택의 기준은 6명 (여자 3, 남자 3)이 머무르기 적당한지, 부엌이 좋은지, 화장실이 두개인지, 집에서 오로라가 보이는 지 등이었다.

 

여섯 명 모두가 여행이 끝나고 서로에게 물었다.

“어떤 집이 가장 좋았어?”

사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어디가 제일 좋았어?’ 묻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집’이었는지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의 집은 ‘오로라를 만나기 좋은’ 이라는 조건을 달았던 만큼, 레이캬비크와 비크 같은 마을에 머물렀던 두 곳을 빼고는 모두 허허벌판에 ‘덜렁’ 우리의 집이 놓여있는 곳들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우리는 “시간을 쌓으며” 함께 하는 여행을 했다.

긴 아침을 맞는 루틴, 따뜻한 커피로 밝아오기 전에 깨어나서 밝아오는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함께 하는 ‘우리’를 위한 아침을 짓는 것.

여행 이동 중, 먹을 간식과 점심거리를 준비하는 것.

어느 날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이 곳에 한껏 취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를 아침부터 정주행하고, 그 길을 찾아나선 것.

보드 게임으로 한껏 웃고 떠들었던 밤.

우리가 겪은, 그리고 앞으로 겪을 성공과 실패의 시간들에 대한 고민으로 지새웠던 밤.

아이돌 덕질의 세계란 무엇인가를 함께 경험해보던 어느 이른 저녁.

그리고 모두가 함께,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즐기는 식사 시간.

오로라가 보이는지, 창 곁을 서성이고 하늘을 쳐다보던 그 숱한 밤들.

그 모든 것들이 이뤄진 우리들의 ‘여행의 집들’이었다.

 

* 이번 여행 이용한 아름다웠던 에어비앤비 집들

레이캬비크 이층집

그룬다피요르드 오로라를 봤던 바로 그 집 

셀라란드 폭포 근처 타운하우스 Bláengi

검은 해변 근처 Syðri-Rot


매일의 “정찬(正餐, 하루 중 가장 잘 먹는 식사)”

7명의 12일치 식사를 위해, 햇반 150개와 카레,짜장 150개 + 밑반찬들과 김치, 라면, 누릉지를 짊어지고 간 여행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많은 분들의 조언처럼 아이슬란드 공항 면세에서 12일간의 맥주를 구매했다. (아이슬란드는 전문 주류 매장에서만 2.5도 이상의 술을 취급한다. Bonus와 같은 식료품점에서는 Lite Beer (2.5% 이하의 주류)만 구매할 수 있다.

여행하면서 우리는 마을에 다다를 때마다, Bonus(아이슬란드의 이마트같은 존재)를 찾았고, 대부분의 식자재를 구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샀던 것은 닭고기, 돼지고기, 감자와 각종 야채들.

여행 중,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

우리의 매 끼니는 “정찬(正餐, 하루 중 가장 잘 먹는 식사)”이었다.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식사 시간이 여행의 한 부분이었던 아이슬란드였다.

여행의 대화들

보이는 것은, 매순간 새로웠고 매순간 격한 감탄이었다.

감탄과 감탄 사이, 우리는 여행 중 ‘대화’를 끊임없이 했다.

마케터의 자질에 대해서.

우리의 지난 시간에 대해서.

좋아하는 연필들에 대해서.

우리 삶의 선택들에 대해서.

꼰대에 대해서.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기록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브랜드에 대해서.

책들에 대해서.

그렇게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여행, 아이슬란드.


여행의 생각들

생각 1. 아무 생각

대체로 많은 여행 중, 나는 일상에서 잠시 수면 밑으로 내려 두었던 생각들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편이다. 그 생각들을 곱씹기도, 다시 되감아 보기도, 새로운 결심을 하기도 하는 과정이 종종 여행 중에 일어나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오롯이 그 순간, 내 앞에 선 자연에게 모든 마음을 빼앗긴’ 그런 순간들이 가득했다. 정말 말 그대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자연들이 우리와 거대하게 담대하게 마주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거두어가는 듯한 강렬하면서 따뜻한 해질녘 검은 해변과, 앞에 선 거대한 바위들 정도는 작은 조약돌인냥 집어 삼키는 거친 파도와, 하얀 지평선과 파란 하늘 사이 오묘한 파스텔풍 연한 하늘색의 그라데이션의 공간까지.

 

생각 2. 우리는 모두 자연 앞에 똑같은 존재다.


나의 그녀는 이때까지 다녔던 수 십번의 여행 중, 왜 이번 아이슬란드를 가장 즐거워했을까.

지금까지는 여행지를 고르는 것의 처음은 대부분 나의 몫이었다. 우리의 여행의 우선순위는 그 곳의 문화를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런던에서는 매일 밤 뮤지컬을 보았고,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작은 마을 교회가 무대가 되어준 트리오 중창 무대를 보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도착과 동시에 캄프뉴로 달려가 F.C.바로셀로나 축구경기를 보기도 했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LA 다져스 야구 경기를 보러 뛰어갔었다.  그리고는 그 곳의 대학들, 도서관, 서점, 편집샵들이 우리의 동선을 이끈다.

아이슬란드를 출발하며, 그녀에게 나는 고백하듯 “여긴 정말 자연과 자연과 자연이 있어.” 속삭였다.

비행 중 착륙에 가까워지면서 아이슬란드 땅이 우리 밑에 펼쳐졌던 그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큰 흥분의 상태였다. 연신 카메라로 광경을 찍는 그녀를 보고, 내 가슴이 더 쿵쾅거렸다.

 

여행 내내, 나의 그녀는 그 어느 여행보다 가장 충실히 여행을 즐겼고, 가장 즐거웠노라 대답하였다.

우리 앞에 있었던 것은 ‘자연’ 하나였는데 그녀는 왜 더 좋았을까.

문득, ‘우리는 모두 자연 앞에 똑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지식으로, 더 많은 경험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는 모두 똑같이 ‘아무 생각’없이 그저 그 자연 앞에 작은 존재로서 그 거대함과 담대함에 고개 숙이고, 감사했을 뿐이니까.


아이슬란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여행이었다.

선으로 그린 우리의 여정, 그 모든 순간이 오롯이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기록하고, 열심히 감동하며 그 마음을 움켜쥐고 왔던 여행이다.

여행 내내 우리는 다시, 이 곳의 여름이 보고 싶어졌다.

함께 약속했다. 내년의 여름, 다시 아이슬란드로.

#우리지금아이슬란드

Isn’t it good just to be alive on a day like this?

이런 날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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