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리더로서 나아가는 것, 용감하게 일터에서 존재하는 것
인터뷰를 볼 때 여성 리더들에게 종종 하는 질문이다.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종종 우리는 '여성'임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굳이 '여성'을 덧붙여 묻는 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딸 셋 중 첫째딸이다.
여자 넷과 남자 하나로 구성된 우리집에서는 모든 것이 지극히 공평했다.
키가 크고, 힘이 조금 센 내가 항상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엄마와 나눠 들었다.
집에 도착된 쌀은 내가 질질 끌고 쌀통으로 옮겼다.
아들 다섯과 딸 하나의 집 안의 막내로 태어난 우리 아빠는 항상 손에 작고 귀여운 것들이 들려 있었다.
우리의 머리핀을 사오시고, 엄마의 꽃을 사오셨던 아빠의 퇴근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동기 녀석 하나가
"빨리 집에 들어가! 여자가 이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있어!"
그날 밤 친구와 술잔을 던져가며 밤새 싸웠다.
그 싸움은 몇 년간 매 번 그렇게 술자리에서 마주하면 반복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계속 다닐거냐고 물었다.
100일의 육아 휴직의 날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아이는 하루하루 성장해갔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주는 이유를, 100일이 지나면 아이가 벌떡 일어나 뛰어다녀서 그런 줄 알았다.
100일 후면 내가 회사를 가는 것이 그냥 당연히 괜찮은 일이되는 줄 알았다.
아이를 위한 나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모유수유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엄마로서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유축기와 저장팩들, 아이스박스를 바리바리 챙겨 두 배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 'mother's room'이 없다는 사실을 수많은 동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수년동안 알지 못했다.
나는 선배들에게 왜 진작에 마땅한 이 요구를 하지 않았느냐고 원망했다.
어느 여성 리더의 이야기를 마주한 날이다.
아, 저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구나.
아, 저렇게까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구나.
아, 멋진 어른 여자가 될 수 있구나.
그 날, 나는 기대했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따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사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랑했다.
다 남편 덕이라고 했다.
그러다 다시 남편을 따라 돌아온 한국에서 운이 좋게도 다시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다 남편 잘 둔 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남편의 아침을 매일 빼먹지 않고 차려준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남편의 셔츠를 매일 다리고 있노라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 했다.
정말 화가 났다. 얼굴이 벌개졌다.
정말 짜증이 났다. 손에서 땀이 났다.
그 날밤 자고 있는 나의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 먹었다.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
나의 딸이 오늘의 나처럼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화가 나는 날을 마주하게 하지 않겠다.
내가 주저했던 모든 순간들 앞에서, 그녀 또한 주저하도록 하지 않겠다.
일하는 엄마니까, 그녀 곁에 100%의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하니까 미안해하던 마음 대신에,
멋지게 살아가는 여성 리더의 모습으로, 가장 멋진 엄마의 몫을 다 해주겠다 마음 먹었다.
나를 앞서 살았던 선배들에게 왜 진작에 요구하지 않았느냐고, 소리내어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왜 바꾸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것 대신에, 내가 기꺼이 애써서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참아내고, 이런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이것은 틀렸다고, 바꾸자고 요구하는 어른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이제 내가 십여년 전 마주했던 당황스러웠던 한 여성 리더의 나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더욱 끊임없이 배우고, 매 순간 나의 선택을 바라보고, 후회하면 다시 더 잘해보자고 마음 먹고, 잘해냈으면 아낌없이 칭찬한다.
다양성, 공평함 그리고 포용. 이 단어들은 나의 삶에서 무척 중요한 가치이다.
끊임없이 내가 배우고 있는 가치들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속해왔던, 그리고 속해있는 조직들이 그 가치들을 중히 여겨왔다.
모든 결정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치이자, 조직의 건강함을 지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우리 가족에게, 내가 속한 조직에게, 더 넓은 세상에게 다양한 목소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
그 다양한 목소리들에게 공평한 기회와 공평한 댓가가 주어지는 것.
서로 다르더라도 그 모든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불편하지 않게 공존하도록 하는 것.
매년 '편견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올해 초 겨울, 나의 그녀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러 간 날이다.
우리는 교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학창 시절, 나는 "왜 교복이 필요한가"를 왜 묻지 않았을까?
여러 이유들을 함께 가정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의 결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편견, 드러날 수 있는 작은 차이로 생길 수 있는 편견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라는 이유로 그녀가 입어야 하는 교복의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교복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가게의 직원분은 묻지도 않고 치마를 건넸다.
"저는 바지를 맞출 건데요." 나의 그녀는 거절했다.
"그 학교 여학생 중에 치마 안 맞춘 친구는 한 명밖에 없어." 직원분이 다시 치마를 내밀었다.
"그래그래 여자 아이들은 치마 입어야 예쁘지." 할머니가 거들었다.
"그 결정을 한 친구가 한 명이라고, 그 결정이 틀린 것은 아니잖아. 여자라고 치마 입어야 예쁘다 그런건 편견이야." 그녀와 나는 반박했다.
"편견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나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치우친 사람이었는가를 깨닫게 했던 정말 충격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식하고 있는 편견들은 열심히 다스리며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생각보다 나 자신 또한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의 편견이 얼마나 무섭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마주했다.
우리 한 명 한 명의 이런 무의식에 기반한 편견들이 작용하고 있는 사이,
그런 한 명 한 명이 모인 조직에 생길 수 있는 더 큰 무의식의 결정들.
그리고 그 조직들보다 더 큰 세상이 갖게 될 어마어마한, 의식하지 못했으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편견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배웠다.
더 큰 용기를 내고, 그 편견을 다스리며, 포용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몸서리치며 깨달았다.
열렬한 동맹자가 되어 주는 것. 또 다른 한 축의 지지자들.
젠더 평등, 공평한 기회의 세상.
한 축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한 축과 이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한 축의 뜨거운 동맹 의식과 열렬한 지지로 이뤄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함께 단단해지자고, 함께 용감해지자고, 그렇게 세상의 변화를 용김있게 이끌어가자고 이야기하던 어느 날 밤 우리 모두의 옆에 함께 했던 우리의 든든한 동맹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던 그 순간을 여전히 떠올린다.
용기란 우리가 기를 수 있는 근육이라고 쓰여있던 그 페이지를 종종 펼치곤 한다.
한번 용기를 내고, 두번 용기를 내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근육을 열심히 단련시켜야 하는 오늘이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성 리포트를 공개한다.
기업들 스스로가 조직내에서 노력했던 시간들에 대한 과정을 지켜보고, 회고하며
앞으로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조직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그 다양성을 근거로 결정을 내려야 세상을 담을 수 있다.
Meta (https://about.facebook.com/) 는 올해 7월에 발표한 다양성 리포트에 따르면
2014년 15%에 불과했던 기술직 여성 근로자 비율을 2020년 25%까지 성장시키고 있으며
리더쉽 그룹의 여성 리더 비율을 35.%까지 확대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건강한 조직을 이루고
그 건강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시간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조금씩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믿음
그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이 마주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내일의 출근을 준비한다.
Leave No Woman Beh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