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ia Nov 14. 2016

pm 11:00

나를 만나는 시간

술을 몰아 마시고 난 뒤,
나는 그냥 슬프다.
다들 이제 나아졌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매일 같은 시간,
숨 참으며 내 몸에 쏟아 부은 알콜.
그리고 이내 느껴지는 아련하고 아득한 감정들.


그 함축된 시간에 나의 솔직하게 발가벗은 감정을 몰아두면, 남은 시간에 보다 멀쩡할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엔 이겨낸듯, 지워낸듯, 떨궈낸듯 해 보이겠지만.
24시간을 지키는 내 스스로는 알고있다.
총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던 것 같은
원망으로 넘치는 시간들.
마음같지 않은 세상 살이를 제 때 발달과업으로 배우지 못한 것 같은 나에게,
마음같이 안 되는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두살배기가 마라톤하는 냥 벅차다.


알콜의 힘을 빌려
민낯처럼 가감없이 드러낸 나의 감정과 본능 앞에서도
연락처를 누를 용기가 없는
내안의 아주 작고 여린 소녀.

그 소녀는 매일 낮에도,
너를 마주하는 매일 밤 열한시를 매일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의 자리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