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로컬리너마저 '천천히'
아침 7시, 알람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초단위로 시간을 세기 시작한다.
20분내에 샤워를 끝내야 한다. 머리 말리는데는 딱 5분이 주어진다.
어제 대충 머리속으로 그려놓은 옷을 입어 본다.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안나오면 그땐 끝이다. 분명 옷장 앞에서 10분은 더 쓸게 분명하고,
그럼 아침을 포기하거나 10분 늦게 버스를 타야 한다.
다행히 크게 나쁘지 않았고, 옷을 입고, 스킨과 로션, 선크림을 바르는데 5분 정도를 더 쓴 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후다다닥 밥을 먹고 버스타러 나선다.
꾸물꾸물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이런 날씨에는 산울림이 제격이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추억'을 거쳐, '동화의성'까지 가사를 곱씹는다.
이어폰을 꽂아 산울림을 들으며 걷자니, 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되뇐다.
"까짓것, 인생 뭐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하나 제대로 못들어서야."
음악에 맞춰 걸음을 늦추며 걷자니 옆에 꽃도 보이고, 청소하는 경비아저씨도 보이며, 아파트를 나서 학교 앞을 지나갈땐 가볍게 목례만 나누던 학교지킴이 아저씨도 보인다.
버스앞 유리창에 붙어야만 탈 수 있는 만원 버스를 몇 대 보내고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본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음악만 듣는다.
선곡이 바뀌어 브로컬리너마저의 '천천히'
갑작스레 눈물이 차올라 고개돌려 숨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고
눈물이 차 오는 건 참 급해
서두르면 쏟아질 것 같아
천천히 걸었네
좋았었던 날은 너무 짧고
불행이 다가 오는 건 급해
서두르면 넘어질 것 같아
천천히 걸었네
천천히
눈물이 마를 때 까지
천천히 걸었네
그래 한번쯤은 천천히, 느리게, 곱씹어 가사를 보고, 또 보고.
음악을 천천히 듣고 또 듣고.
안보이던게 보이고, 안들리던게 들리는..
천천히 살아보기. 느리게 살아보기.
까짓 인생 뭐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