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니첼과 비엔나 왈츠를!
콰르텟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거리/ 슈니첼을 먹었던 레스토랑
아들과 함께 간 오스트리아 행 여름휴가.
비엔나. 독일어로는 빈(Wien)이지만, 비엔나(Vienna)라는 영어식 발음이 나에게는 입에 붙는다.
왕복 비행시간을 생각하면 빠듯한 일정을 겨우 끼워 넣듯이 가게 된 비엔나.
클래식 거장들이 탄생한 곳임을 모든 분위기가 말해주고 있었다. 세피아 톤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배경으로 거리마다 펼쳐지고 있는 클래식 공연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춘다. 광장 한편에서는 음악대학 학생들로 이루어진 현악 콰르텟(바이올린 2, 비올라 1, 첼로 1 구성)과 기타 솔로가 마치 하나의 호흡처럼 연주하고 있었다. ‘넬라 판타지아’가 흐르자, 주변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조용해졌다. 아름다운 선율이 오후의 풍경 속에 섞였다. 한참 빠져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또 멈출 수밖에…. 이번에는 색소폰이 나를 붙잡는다. 그 거리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도 좋아질 여행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달랐다. 이곳은 클래식의 고장, 비엔나가 아니겠는가? 음악 거장들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반나절 투어를 신청했다. 아들에게 음악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 쨍쨍한 햇살 아래 이른 아침부터 투어가 시작되었다. 곳곳에는 큰 성당, 작은 성당들. 그중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슈테판 성당을 시작으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잠들어 계신 ‘빈 중앙묘지’를 거쳐, 가이드가 들려주는 모차르트의 쓸쓸한 스토리에 그의 삶을 떠올려보고, 베토벤 박물관까지….
하지만 땡볕 아래, 투어가 끝을 향할수록 열두 살 아들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투어를 신청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너무 배가 고팠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지만, 그전에 탈진할 것 같았다.
마침내, 가이드는 비엔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도시 끝자락인 전망대에 서니, 멀리 포도밭과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음악을 품은 비엔나는 근사한 풍경이 되고, 부드러운 미풍이 고운 선율처럼 불어 지칠 대로 지친 얼굴 위를 스친다.
“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갈증과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햇살을 닮은 오렌지색 칵테일이 테이블에 놓이고 멀리 수채화처럼 펼쳐진 풍경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이윽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접시가 다가왔다.
비엔나에 왔으면 꼭 먹어봐야 한다며 가이드가 추천한 ‘슈니첼’.
보기에는 돈가스와 흡사했다. 송아지 고기를 얇게 펴서 빵가루를 입혀 노릇하게 튀겨 낸 먹음직스러운 크기. 돼지고기로 만들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송아지 고기를 사용하여 ‘비너 슈니첼’이라 부른다고 한다.
기대가 가득한 손길 아래, 나이프 끝에서 ‘바사삭’ 소리가 현악의 첫 활처럼 또렷하게 터졌다. 포크가 닿을 때마다 맛있는 스타카토가 접시 위로 떨어졌다. 바삭한 튀김옷이 고기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감싸는, 이것은 완벽한 비엔나의 왈츠!
더위로 울상 짓고 있던 아들의 얼굴은 이미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우리의 입안에서는 그 무엇보다 멋진 콘서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비엔나의 일정을 아쉬운 마음으로 마치고 돌아가는 공항.
“아참! 비엔나커피를 안 마셔 봤네?”
평소에는 블랙커피만 마셨지만, 추억의 비엔나커피가 떠올랐다. 공항 안 커피숍의 메뉴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러나 정작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비엔나커피’라 불리는 것이 ‘아인슈페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알게 된 건, 그렇게 감동하며 먹은 ‘슈니첼’의 사진이 없다는 것!
여행에서는 습관처럼 사진 찍기 바쁜 나였지만, 먹는데 정신이 팔렸던 건지 사진을 남기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레스토랑의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었다. 미궁 속으로 빠진 그 맛.
하지만, 그날의 슈니첼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달콤한 휴식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맛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추억하곤 한다.
그래, 그걸로 충분하지.
주문오류! 비엔나에 없는 비엔나 커피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