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이 되고싶은, 그러나 어딘가 뿔이 난
“엄마, 미쳤어? 내가 뭘 어쨌는데.
모르겠어 내가 뭘 그렇게까지 죽을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파혼한게 엄마 발등 찍는 일이야? 회사 그만둔게 엄마한테 비수 꽂은 거야?
(...중략...) 엄마! 나 힘들어서 왔어. 나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좀 쉬어라, 고생했다. 그렇게 좀 말해주면 안돼? 나는 왜.. 나는 왜 엄마의 자랑이어야 돼. 가끔은 흉이어도 흠이어도 그냥 엄마 자식인 걸로는 안돼? 내가 왜 엄마 인생의 포장지가 되어 줘야 하는데?"
- < 엄마친구아들> 中 석류의 대사 -
몇 주 전 종영한, 드라마 < 엄마친구아들> 에서 주인공(배석류)는 가족 몰래 미국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와도 파혼하며 한국으로 돌아온다.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그녀의 장래에 가장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은, 딸을 뼈빠지게 서포트한 엄마.
협곡과 같은 깊은 사랑은 종종 빙하와 같은 비수를 품고 있는 법이다. 비수와 같은 아쉬움을 표출하던 엄마에게, 석류가 진짜 마음의 소리를 꺼내놓았다.
'엄친딸' '엄친아' 가 아닌 채로 살아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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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석류가 뭐 하나 잘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은 엄친아, 육각형 인간의 정석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한 '육각형 인간'. 이제는 대국민 베스트셀러가 된 <트렌드코리아>의 2024년 버전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은 외모/학력/자산/직업/성격/특기 등 모든 측면에서 ‘흠 없는‘ 육각형 인간을 선망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실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다.
학창시절 '학습'에 큰 흥미는 없어도
적당한 머리와 엄청난 성실성으로
소위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학 진학 후 소위 'OO대생처럼 생겼다'라는 말
(칭찬이 아니다)을 듣고 싶지 않아 꾸미는법을 익히고
적당한 명예와 (아마도) 사명감을 채워줄 수 있는 직업으로 고시를 치고 5급 사무관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잘 자랐다'는 말을 듣기 위해
모나지 않는 성격을 택했으며
'특이'하다고 보일만한 특기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세련되고 고상해보이는 취미에 날 맞추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되어 있고
서울에 부동산 몇 채 있으시니..자산도 나쁘진 않겠다.
그렇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밤도 많았다.
나는 나만 아는, 비생산적인 즐거움으로
밤을 가득 채우고
세련되지 않고 정제되지 못하며 까다로운 나의 취향과본모습을 여지 없이 표출했다.
그런 수많은 모습들을
그림자가 짙은 뿔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절제하며 수련하여
언젠가 이 뿔을 깎아 없애서
낮에도 밤에도 비례와 균형의 육각형 인간으로
만들어가는게, 내 지상 목표였다!
그러나 얼굴에 난 뾰루지가 만질수록
붉게 부풀어오르듯,
뿔은 손 댈수록 커져 일상 곳곳에서도 제동을 걸었다.
'정말, 날 무시할거야?'
.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이 뿔을 안고 살아갈거라면
하나의 각을 만들자.
그래서 탄생했다, 나의 새로운 각. 제7각.
육각형과 달리 칠각형은 완전하지도,
균형잡히지도 않았다.
어딘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육각형'으로 나의 뿔을 밤 속에 영원히 가둘 수 없다면
차라리 '완전하지 못한 칠각형'이 되어보리라.
일각에서는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말고 무엇 하나는 포기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평생 육각형 인간을 추구해온
나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놓지 못한다.
'완벽'이라는 허황되지만 달콤한 이상을..
그 사이에서 고통받느니, 하나의 각을 만들어서
시간을 쏟는게 현명하다.
그렇게 나의 '칠각형 인간 만들기'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