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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y 05. 2023

답 없는 것이 삶이지만, 답이 없어 매력적인 것도 삶

포기는 다음을 위한 또 다른 용기이다.

집 가까운 곳에 사찰이 있다. 커다란 좌불이 있어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좀 유명한 곳이다. 팬데믹 전에는 자주 가곤 했었는데 한동안 가지 못했다. 봄볕이 가지런한 날. 오랜만에 사찰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우니 금방 도착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도로가 막혔다. 길게 늘어진 차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사찰에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섰을 때 줄지어 늘어선 차들이 사찰로 가는 차라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 오신 날 말고는 없던 일이라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몇 해 전부터 사찰에 겹벚꽃이 피어 꽃구경을 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의 속도는 더욱 늦어졌다. 출발하기 전에는 고요한 사찰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요는 없을 것 같았다. 차를 돌릴만한 곳이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였다. 앞을 보며 두리번거리는데 샛길이 보였다. 샛길에는 팻말이 있었다. 팻말에는 다른 사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샛길로 차를 돌렸다. 사찰까지 가는 길은 차 두 대가 오고 가기 빠듯한 좁은 길이었다. 언제쯤 사찰이 나올까 궁금하던 차에 나와 반대 방향에서 차 한 대가 멈추어 있는 것이 보였다. 차는 한쪽에 멈추어 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웠다. 차와 마주치며 꾸벅 목례를 했다. 잠시 후 앞에서 내려오는 차가 보였다. 나는 한쪽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려오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내려오던 차도 나를 향해 목례를 했다.


흐뭇했다. 왠지 곧 도착할 사찰이 좋은 곳일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사찰은 경사진 산에 터를 잡고 있었다. 안내문을 보니 사찰은 천년고찰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이렇게 오래된 사찰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찰에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방해를 주지 않으며 사찰 주변을 오고 갔다. 대웅전 마당에 서니 아주 먼 곳까지 보였다. 높은 곳에 있어서 인지 바람이 불었다. 세상 욕심이 묻지 않은 것 같은 신선한 바람. 가슴이 트이도록 숨을 크게 쉬었다. 마당에 달린 연등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흔들림은 풍파의 흔들림처럼 거세지 않았다. 장난치듯 천진스러운 흔들림. 그것은 자유로움이었다.


혼란 속에서 고요 속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방금 전 늘어선 차들의 행렬 속에서 이유를 모른 체 마음이 복잡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롭고 고요한 세상에 와 있었다. 행복이 느껴졌다. 조금 전 나는 가려던 방향을 포기하고 새로운 변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하나에 집착하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평범함 중에서도 주목받는 하나보다 더욱 감동적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쁨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 마음이 경직되어서다. 늘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집착한다. 그러나 삶은 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성공의 확률은 낮고 실패의 확률은 얄밉도록 높다. 매번 실패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절망은 아주 작은 변화의 시도로 사라질 수 있다. 변화는 한반도 가보지 않은 작은 샛길로 들어서며 시작된다. 샛길은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시작이어서 두렵다. 본래 가던 길을 포기하게 되니 아쉽다. 그러나 포기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깜깜한 골방에 갇혀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 아니다. 포기는 다음을 위한 용기이다. 용기 내어 새로운 샛길로 접어든다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 세상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 쏘아 올린 이해와 배려와 양보가 있다면 집착 속에 살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강박처럼 가지고 있던 나의 바람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변화의 시도로 생각지 못한 참신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답이 없는 것이 삶이지만 답이 없다는 그 사실 때문에 매력적인 것도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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