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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r 15. 2024

좋은 시절

우리의 가장 좋은 시절은 바로 오늘 일지도 모른다

이번 겨울 엄마는 많이 약해지셨다. 도통 입맛이 나지 않아 식사를 잘하지 못하셨다. 기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수액을 맞자고 하니 싫다고 하신다. 힘이 드니 병원 가시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강단이 센 엄마였다. 코로나도 지금까지 확진 없이 잘 버티셨다. 지난해 여름 좀 힘들어하셨지만 워낙 더위에 약한 체질이어서 겨울이 되면 좋아지겠지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력 찾는 것이 힘드시다. 팔순이 넘으셨으니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앙상해진 다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더 큰 염려는 마음이 약해지신 것이다. 자주 허전해하시고 때로는 아이 같을 때도 있다. 가족 돌보는 것을 평생의 일처럼 살아왔던 엄마다. 그러나 이제는 돌봄을 받아야 한다. 엄마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신 것 같다.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20대 시절. 훈련소에 가던 날. 엄마는 나를 꼭 안아 주셨다.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일이 처음이어서 엄마도 나도 상황이 얼떨떨하고 서먹했다. 입대 후 엄마는 내가 보고 싶으면 면회를 오시곤 했다. 대부분은 아버지와 함께 오셨는데 때로는 동생과 오실 때도 있었다. 그 당시 동생은 서울에 있어서 엄마와 동생은 불광동 터미널에서 만나 경기도 북부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한 번은 만나기로 한 동생이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연락할 테지만 당시에는 달리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작은 터미널 대합실에서 막연히 동생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어둑어둑 해지자 엄마는 조금씩 막막해지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 터미널 매점 아주머니와 얘기를 하며 동생을 기다려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가끔 그때 얘기를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데 불광동 터미널까지 어떻게 갔는지 물어보곤 한다. 그럼 엄마는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밝게 말한다. 그때는 젊어서 찾아갈 수 있었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젊었던 엄마를 떠올려 본다. 그러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신 나를 보기 위해 낯선 곳에서 두근거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동생을 기다리던 엄마의 마음이 애틋해 가슴이 뭉클할 뿐이다.


회사일로 출장이 잡혔다. 출장 갈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 지도로 찾아보았다. 위치를 찾다 낯익은 지역 이름을 보았다. 그곳은 내가 군 생활을 했던 지역. 부대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거리뷰로 매일 아침 구보로 왔던 큰길에서 부대 정문으로 향하는 마을길을 따라갔다. 머릿속에는 지금도 가끔 꿈에 나타나는 위병소와 연병장과 부대막사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부대는 볼 수 없었다. 군사지역이어서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아쉬웠다. 다시 큰길로 나왔다. 국도를 따라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외박을 나가던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면회를 온 가족들과 하루를 묵던 여관, 음식을 먹던 식당, 상점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 예상 못한 것도 아닌데 내 눈은 엄마 잃은 아이처럼 방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서글픔이 몰려왔다. 혹시 못 찾는 건 아닌가 싶어 이리저리 화면을 확대해 보았다. 작은 흔적이라도 찾는다면 서글픔이 가셔 것 같았다. 그러나 없었다. 붉게 물든 석양을 품은 하늘처럼 서글픔은 그리움이 되어 갔다. 지도 속 거리 어딘가에 있던 젊고 고왔던 엄마와 건강하셨던 아버지, 푸릇한 청년이었던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이 있다. 사람들은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시절이라며 시작된 이야기는 밤을 새워 수도 없이 읽어 외워버린 연극 대본처럼 술술술 멈출 줄을 모른다. 듣다 보면 그들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모두 좋은 시절이었다. 결국 좋은 시절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 모두였다.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하는 "한때"가 한 사람이 살며 지나온 매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좋은 시절이 언제였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웃고 울고 견디고 버티며 살아낸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모든 날이 좋은 것이다.


오늘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며칠밤만 지나면 봄이 올 것 같다고. 그러면 가벼운 옷을 입고 하얗고 노랗고 붉은 꽃이 만발한 길을 따라 드라이브하자고. 봄 햇살을 받으면 엄마의 몸도 마음도 좋아질 거라고. 꽃을 보다 기억 속에 숨어있던 엄마의 젊은 봄과 나의 지난봄이 떠올라 눈물이 조금 나더라도 내일이 되면 오늘이 우리의 좋은 시절이 될 테니 행복하게 꽃을 보자고. 꽃을 보는 모든  우리 좋은 시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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