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일 때 즈음만 해도 누가 '너 뭐 될래?' 물으면 당당하게 해커라고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도, 해커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약간 전문적인 미지의 세계, 컴퓨터를 굉장히 잘하는 괴짜, 그렇지만 조금은 음침한 영역』정도인데 그때, 그 시절에도 해커에 대한 이미지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흔히, 내 꿈 내지는 희망을 얘기할 때 친구들과 (부모님을 포함 한)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와 그거 진짜 멋있는 거잖아" 혹은 "일단 공부부터 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
생각 외로 그 당시에도 해커라는 단어 자체는 그다지 생소한 의미가 아니었는지 ' 해커? 그게 뭔데?'라고 묻는 사람은 없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보면 해커가 '진짜 멋있는 것' 인지 그리고 '좋은 대학'과도 큰 상관관계가 있는 업(業) 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전자의 의견은 당시 그나마 PC를 좀 잘 다룰 줄 아는 나를 보며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통해 Dos, GW-Basic, 코볼, 포트란 등을 만지기도 해서 나이 또래에선 PC를 제일 잘 하긴 했었다) 친구들의 약간은 경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부러운 시선이었고, 후자는 당연히 부모님을 위시한 주변 어른들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당연하게도 난 해커가 되지는 못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보다 일찌감치 포기했다. 점점 PC에 빠져들면서 그리고 고등학생 때 PC통신 BBS에 탐닉하면서 내가 꿈꿔왔던 해커는 (당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그 세계는 나와는 다른 "Another Level"임을 일찍 깨닫게 돼 버린 것이 그 이유였다. 그만큼 그때의 나에게 있어 '해커'라는 존재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빠른 포기를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 나는 우리나라 IT대기업에서 IT보안 업무를 약 16년째 하고 있는 직장인이자 IT엔지니어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해커는 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나마 해커와 비슷한 기술을 업무에서 활용하고 있으니 시쳇말로 '본전은 이룬 장사'였는지도 모르겠다.
해커라는 단어는 아직도 나에게 있어 멋있음의 영역이고, 이상(理想)의 영역이며,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신(神)의 영역이다. 그래서 난 지금도 감히 화이트 해커라고 불리기보다는 IT보안업무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게 편하다.
그러나 요새 젊은 친구들은 해커를 꿈꾸지 않는다. 해킹 기술을 갈망하지만 '해커가 되고 싶어요' 하는 친구는 별로 없다. 'IT보안업무를 공부하고 싶어요' 혹은 '어떻게 IT보안회사에 입사하나요?'라는 의문을 가진 보다 현실적인 친구는 많다. 그 이유는 심플하다. 요즘 해커는(실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직업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력 대비 메리트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급 해커로 이름을 날리고 특정 시스템을 뚫고 뉴스에 오르락 내리면 -설사 그 일로 감옥까지 갔다 왔더라도- 대기업이나 유명 IT기업에서 돈을 싸들고 서로 모셔가려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에서 굳이 리스크까지 짊어가며 해커를 고용하지 않는다. 상위 1%의 실력을 가진 시한폭탄 같은 해커보단 적당한 IT보안실력에 사회성 좋은 엔지니어를 더 선호한다.
나에게 있어 해커란 그때의 멋진 낭만이었다면, 그들에게 있어 작금의 해커는 별 볼일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들은 해킹이나 해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IT보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해킹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안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주(主)는 IT보안에 대한 이야기이고 순수 해킹에 대한 이야기는 양념 정도로만 쓸 예정이다.
그리고 학원이나 책이나 구글링으로는 알 수 없는 필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담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 개인적으로 IT보안업무는 책으로 배우는 내용과 필드에서 느끼는 내용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재미있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물론 내용 자체가 가볍지는 않게』
부디 내가 앞으로 쓸 글들이 (한 번쯤은 해커를 꿈꾸었을) IT보안 직무를 준비하는 취준생이나, 해당 카테고리에 관심 있는 일반인 그리고 이 바닥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저 연차 Junior 레벨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