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의 세계
쿠팡의 출고 공정은 ‘긴급’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쿠팡은 24시간도 길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고객에게 물건을 안겨주는 배송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배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집품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당연한 사실이다.
오전의 출고 집품 pda에는 대부분의 경우 ‘긴급’이라는 글자가 떠 있는데,
나는 그 긴급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처음 출고 집품을 하고 있었으니 긴급이라는 글자가 항상 떠 있는 건지,
특수한 상황에만 뜨는 건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즈음이었나, 낯선 물건을 찾으러 낯선 선반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가 관리자에게 물건의 위치를 물어야만 했을 때 나는 다소 어리둥절한 상황을 맞게 됐다.
내 pda를 본 관리자가,
‘사원님, 이거 긴급!’ 하면서 짜증 가득하지만
육중한 체구에 비해 재빠른 몸놀림으로 pda를 가로채서
몇 가지의 물건을 토트에 담더니 마감까지 해서 레일에 올렸던 것.
더욱 어리둥절했던 건 관리자는 그러고 나서도
내게 긴급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는데,
결국 나는 긴급이란 그냥 빨리 레일에 올려야 하는 거로구나 라는
짐작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의 출고 ‘선생님’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보통 출고는 오전 11시 30분까지 긴급이 있어서 아주 바쁘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큰 토트에 물건을 어느 정도 채우지 않아도 빨리 레일에
올려야 한다고 하는데, 아예 pda가 더 이상 토트에 물건을 담지 말라고
자체 마감을 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내가 쿠팡에서 주문한 물건이 빨리 도착한 만큼 물류센터에서는
누군가가 빨리 집품하고 빨리 보내느라 아주 많은 걸음을 옮겨야 했다는 뜻이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당장 쿠팡의 빠른 배송에 고생하는 주변의 사원들보다
왜 이 관리자들은 긴급을 모르는 신입에게 긴급에 대해 말해주는
잠깐의 수고도 하지 않은 것인지가 의아스러웠다.
더불어 그때 단기 알바의 위치,
쿠팡에서 쿠팡의 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처지에 대한 깨달음도 불현듯 찾아왔다.
나처럼 단기 알바로 왔던 모든 이들이 이후 거듭해서 쿠팡을 찾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한 두 번의 경험을 원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혹은 할 수 있는 일인가 없는 일인가 간이나 보자고 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며,
출고는 나와 맞지 않으니 다른 공정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러니 나 같은 단기를 이해시키자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건 사실 아주 합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 끝에 나는 내가 앞으로 쿠팡의 여러 공정 중에서 출고를 선택한다면
결국 알아서 눈치껏 깨우치던가, 아니면 관리자나 다른 사원들을
귀찮게 만들면서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잠깐 경험을 위해 쿠팡에 온 게 아니었다.
좀 더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으니 어떤 공정이든 선택을 미리 해두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고민이 깊어졌다.
유독 빠른 걸 못 견뎌하던 내가 무엇보다 빠른 걸 추구하는 ‘긴급’의 영역에 있는 쿠팡 출고 공정에서 일할 수 있을까?
입고와 출고 중에 선택하기에 앞서 다른 일을 찾아볼 기회가 더 있을까?
내게는 icqa와 반품 공정이라는 기회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