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사는 사람들
나의 첫 출고 공정 일은 선반이 아닌 팔레트에 놓인 물건들을 집품하는 일이었다.
팔레트 물건들은 무겁거나 커서 상자 째 놓인 것들이라는 특징이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상자를 직접 열어서 집품해야 하는 작업이 동반됐다.
상자를 직접 연다는 건 상자에 붙은 테이프도 뜯어내야 한다는 거라 쿠팡에는 안전칼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말 그대로 안전칼이라 테이프를 뜯을 정도는 되지만 날카로워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어려운 칼이었다.
테이프를 뜯을 정도의 날카롭지는 않은 칼이었다는 건 상자의 테이프를 제거할 수는 있었으나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집품 업무를 가르쳐준 50대 사원은 쿠팡에서 제공하는 안전칼이 아닌 손안에 쏙 들어오는 동그란 모양의 칼을 가졌는데, 개인적으로 준비한 칼이라고 했다.
칼이나 가위 같은 물건은 반입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서 반입이 가능했느냐고 묻자,
작아서 감지가 되지 않는다며 다이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그 말을 듣고 한 생각은 물론 좀 더 날카로운 칼이 있으면 안전칼을 쓰는 것보다 작업이 쉬워지기는 하겠지만 굳이 칼을 직접 준비해서까지 더 열심히 신속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거였다.
동시에 나는 쿠팡의 식당과 휴게실에서 주워들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떠올렸다.
오직 쿠팡에서 일한다는 접점 하나로 만난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가 궁금했었는데, 그때 이미 일을 하면서 가까워진 사람들이니 개인적인 얘기를 주고받지 않을까 했던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쿠팡 사람들은 열에 아홉 정도의 비율로 쿠팡의 일에 관해서만 얘기했다.
열에 하나 정도가 어제 뭘 했다 내일은 쉴 거다. 식의 그나마 개인적인 소재의 것이었다면 나머지 얘기들은 모두 일 얘기뿐이었다.
뭔가 얘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공통된 화제가 쿠팡뿐이라 마지못해서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흥분이나 짜증 등의 감정이 섞인 열정까지 담긴 어조여서 나는 좀 의아했다.
쿠팡의 일 대부분은 말 그대로 단순 노무직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일을 놓고 나면 굳이 개선이나 성찰이 없어도 되는 일이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든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필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 잘, 수월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만들어볼 수야 있겠지만 쿠팡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열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시받은 대로 일하되, 관리자가 금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쿠팡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쿠팡의 일에 대해서 어영부영하지 않았고 더 잘하고 싶어 했다.
쿠팡의 물류센터는 대부분 고립된 느낌을 준다.
물류센터는 주변이 온통 논밭인 시골에 위치해서 조퇴를 하거나 도중에 박차고 떠나고 싶어도 나갈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곳으로 쿠팡은 아침저녁 셔틀버스에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고, 휴대폰을 두고 작업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노동자들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일하면서 고립과 단절,
혹은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하고 싶다면 쿠팡 물류센터 알바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쿠팡을 나설 때면 단절의 경계를 넘어선 기분이 묘하게 다가왔는데, 집에서 씻고 잠을 자는 시간이 하루의 반 정도라고 하면 나머지 반은 쿠팡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하루가 그 기분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았다.
쿠팡 계약직처럼 일주일에 5일을 쿠팡에서 일한다면 쿠팡은 분명 누구의 인생에서든 아주 중요한 위치로 자리를 잡을 게 분명해 보였다.
학교나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숙명과도 같은 일이긴 하지만 쿠팡 물류센터처럼 고립된 환경에서라면 쿠팡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지 않는 게 오히려 어려울 것 같았다.
쿠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과연 하면서 살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어쨌든 쿠팡을 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