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로 1년 살기 - 9

인생의 의미 따위

by 이응이응이응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오후 근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안한 예상이 들어맞아 나는 길을 헤맸다.


함께 교육을 받은 후 입고 공정에 투입된 사람들의 면면도 기억하지 못했으니,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따라갈 수도 없었는데 검색대를 지나자 바로 난관이 찾아왔다.


계단은 앞과 뒤로 여기저기에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도무지 모르겠던 것이다.


쿠팡에서 나 같은 사람이 처음이 아니었을 테니 아주 익숙한 듯, 나이 지긋한 안전요원 한 분이 계단을 가리켰고 나는 기꺼이 그 무심한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분이 내가 어딜 찾는지 모를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쨌든 올라가면 다 연결은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시간도 촉박했다.


계단을 오르니 바로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일단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긴 한데, 아까 내가 있던 그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관리자가 서 있고 pda를 보관하던 입고 데스크로 가야만 하는 게 맞았으나 수없이 늘어선 진열 선반들에 가려서 아까 본 입고 데스크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지나던 사람이 있어서 입고 데스크의 위치를 물었고, 또 더 다행하게도 그 사람이 입고 데스크의 위치를 잘 아는 사람이어서 나는 제시간에 맞춰서 익룡이 있는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쿠팡에서 길을 잃는 게 오히려 너무 당연하다는 걸 쉽게 배울 수 있던 경험이었는데, 길을 잃으면 기꺼이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도.


아마 그들 역시 처음에는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고, 그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마음은 금세 노동요를 뚫고 나오는 익룡의 목소리에 거칠어졌다.


처음에야 익숙하고 흥겨운 음악이 들리니 좋았는데, 일이 점점 힘들어지다 보니 끊임없이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는 노동요가 약간 고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힘들어서 멈추고 싶은데 뒤에서 계속 미는 느낌이랄까?


온통 새로운 경험에 찌들어 누더기가 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쿠팡 알바의 첫날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새로운 상황, 새로운 경험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그 계기가 내게 마냥 달가웠을까?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나를 더 잘 알고 싶지도 않았다.


늦은 나이에 멋진 남자를 만나서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 적도 없었고, 나에게 뭔가 대단한 한 방이 있을 거라는 낙관에 허우적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왜 내게는 그게 잘 안 됐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출근길에 타고 온 셔틀버스를 그대로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웠다.


첫날은 함께 교육을 받은 신규 사원들 사이에 있어서 모르거나 못해도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방패막이 있는 느낌이었지만 다음날부터 나는 여지없이 혼자였다.


교육 없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바로 업무에 투입되어야만 하고 온전히 내 몫을 해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지만, 다음날 셔틀버스를 타는 일만큼은 한결 수월했다.


진짜 문제는 체크인부터였다.


첫날에는 교육실에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향해 스스로 찾아가는 길에 합류해야 했으니까.


첫날에 선택한 공정은 입고였고 둘째 날에 내가 선택한 공정은 출고였는데,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신분증을 건네자 사물함의 번호와 출고라는 글자가 적힌 사원증과 ‘3층으로 가세요.’라는 말이 함께 돌아왔다.


쿠팡 알바를 시작하면서 모든 단계가 미션 수행처럼 느껴졌는데 이때도 그랬다.


셔틀버스 타고 출근하기, 체크인하기에 이어서 업무가 기다리는 일터에 시간 맞춰 도착하는 것이 나의 세 번째 미션이었다.


3층에 도착해서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어제 보았던 대로 조끼를 입은 관리자들이 있는 출고 데스크를 찾았다.


처음 가본 3층은 전날 갔던 2층처럼 역시 넓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는데 2층이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얗고 밝았다면 3층은 좀 더 투박하고 아주 시끄러웠다.


업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출고 데스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는데, 간단한 체조와 교육에 이어서 pda를 챙겨 들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할 때 관리자에게 가서 출고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옆에 잠시 있으라던 관리자는 누군가를 호출했다.


막 업무를 시작했다가 호출되어 온 사람은 50대 남성으로 오늘 나의 선생님이 될 동료 사원이었다.


출고를 처음 해보는 사람은 나 말고도 20대 여성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교육은 입고에서의 일처럼 pda와 토트로 시작이 됐다.


입고가 물건을 쿠팡의 물류센터에 넣는 일이라면, 출고는 반대로 물건을 내보내는 일이다.


출고에서 신입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집품인데, 내가 해야 할 일도 집품이었다.


집품은 주문받은 물건들을 포장해서 배송할 수 있도록 토트 안에 물건을 담아 포장사원들에게 가게끔 레일에 태우는 일을 하는 거여서 어려울 건 없었다.


문제는 아주 아주 많이 걷게 된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집품은 pda로 토트에 붙은 바코드를 스캔하면서 시작이 된다.


바코드를 스캔하면 pda에는 어느 특정 위치로 가라는 지시가 떠오르고, 지시받은 위치로 가서 그곳에 붙어있는 바코드를 또 pda로 스캔하면 내가 집품해야 하는 물건의 정확한 이름과 개수가 뜬다.


그 후에 물건에 붙어있거나 인쇄되어 있는 바코드를 스캔해서 성공했다는 알림을 보고 나서 물건을 토트 안에 담아야만 한다.


pda는 연속적으로 집품해야만 할 물건의 위치를 화면에 띄우는데 pda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채우다가 토트가 어느 정도 차게 되면 토트를 마감한다.


이런 과정이 센터마다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가 처음으로 출고 집품을 했던 센터에서는 레일에 토트를 태우는 방식이었다.


토트 자체가 무겁고 물건이 들어가니 더 무거웠지만 힘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토트를 레일에 태우는 방법을 잘 알려준 선생님 사원 덕분에 이 단계까지는 쉽게 느껴졌다.


오히려 pda로 하는 게임의 느낌이라 입고보다 재밌게 여겨진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느낌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이 반복적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끝없이 걷는 일까지 포함되자 걷는 걸 좋아했던 내가 마치 전생의 나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까지 집품을 하면서 4시간을 걷고 나서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는데 3층에서 사물함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갔다가 식당이 있는 4층으로 다시 올라간 후였다.



작가의 이전글쿠팡 알바로 1년 살기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