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로 1년 살기 - 8

나는 내일 다시 여기로 온다.

by 이응이응이응


식당은 4층이었다.


관리자들은 업무 중이던 사람들을 중앙으로 모두 모아서 pda를 반납하고

원바코드를 스캔하게 한 후 식사를 마치고 1시까지 이곳으로 다시 모이라고 했다.

처음 가보는 식당을 찾아가는 일은 차치하고, 2.2층이었던 넓은 작업장 가운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어서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는 경력직 사원들을 바삐 쫓았다.


내가 일하던 자리에서 검색대를 지나 아침에 있던 곳으로 나오면서 길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도무지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놓칠새로 서둘러 검색대를 통과한 후 사물함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러 갔다.


기다리는 연락은 없었고 휴대폰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휴대폰이 세상과의 연결통로처럼 느껴졌던 잠시의 고립 때문이었을까?


휴대폰이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 철저한 단절을 체험하고 심지어 단절을 깨뜨리는 게 밥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니, 나는 전에 없던 감정의 선을 위태롭게 타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교육을 받았던 2층에 사물함이 있고, 이제 밥을 먹으러 4층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엄밀히 쿠팡 물류센터의 2층은 2층이 아니었다.


2-3층 정도면 건강한 사람이라면 굳이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높이지만 쿠팡의 경우는 달랐다.


쿠팡의 매자닌은 현장 밖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작업장에는 공간이 있고, 작업장 밖에는 계단만 있는 게 다를 뿐.


쿠팡에서 한 층을 올라가겠다고 한다면 여느 건물의 세 개층을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거라고 이해하면 그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2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자고 하면 여느 건물의 6층을 올라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데, 짧은 점심시간과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이라는 게 맞물리자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식당이 위치한 4층까지 이동하려면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영원할 것 같던 수많은 계단의 끝에 이르렀을 때 식당을 찾는 건 몹시 쉬웠다.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식당 밖까지 나와있는 줄이 보였으니까.


쿠팡의 물류센터마다 식당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거의 비슷한 건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일반식과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갔던 물류센터는 다른 센터들과 좀 더 달랐는데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누어서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직접 끓여 먹는 라면에 샌드위치와 음료 등으로 구성된 간편식과 샐러드박스까지 있었다.


선택의 폭이 넓긴 했지만 직접 끓여 먹어야 하는 수고가 들어가는 라면은 싫었고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고 싶지도 않아서 평범한 한식으로 구성된 급식을 선택했다.


줄을 서서 식판에 반찬과 밥을 직접 덜어 담아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급식 시스템은 어려울 게 없었다.


나는 혼밥에 익숙했고 식당 안의 사람들 중 말없이 휴대폰을 친구 삼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이날의 식단과 밥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쿠팡의 식단 자체는 탄수화물에 꽤 많이 치우친 걸로 보였다.


쿠팡 물류센터 대부분의 일이 육체노동이라는 걸 감안하면 탄단지에 식이섬유 비율이 조화로운 식단 같은 건 너무나 쉽게 무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 배가 고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기에는, 온통 처음이었던 경험들이 주는 압도감 때문에 음식 자체에서 얻는 만족은 거의 없었다.


마지못해 오후 노동을 위해 욱여넣듯 속을 채우고 다시 2층으로 내려와 캡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판기 앞에 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천 원이었고 그리 나쁘지 않은 커피 맛이 나서 그나마 심란한 마음에 위로는 될 수 있었다.


1시에 다시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준비시키는 일은 중요했기에 나는 커피와 함께 아침에 교육을 받았던 교육실에 자리를 잡았다.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휴게실로 사용되는 교육실은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커피를 홀짝거리며 내가 한 생각이란 하루가 너무 길다는 거였다.


40대의 나이에 접하는 새로운 경험은 대부분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새로움과 함께 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원해서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아니기에 내게는 쿠팡에서의 모든 경험이 쓰라렸다.


하지만 곧 생각은 다디단 간식을 챙겨 왔어야 했고 오늘 하루를 잘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내 나이와 쿠팡 알바라는 험한 이미지가 만나서 탄생한 쓰린 좌절감 때문에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이게 나의 최선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여기서 최선의 결과를 끄집어낼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내가 다시 2.2층 식사 후 모이라고 했던 그 장소에 똑바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오던 시점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근무 확정’


내일 신청해 두었던 쿠팡 알바 업무 신청이 확정됐다.


나는 내일 다시 여기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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