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미치는 관성의 명암, 보수성과 현실 감각 사이

by 이응이응이응





B는 객관적으로 좋은 결혼 상대자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직업을 가졌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으나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나 자신의 가치를 키우고 인정해 줄 곳이 아닌 적당히 편하게 다니며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결혼이 일생의 목표임에도 결혼 자금으로 벌어놓은 돈은 별로 없었고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돈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었다.


B는 대외적인 조건이 아닌 자기라는 사람 자체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헌신해 줄 남자를 찾았다.


그럼에도 다행한 건 모두 다 갖춘 남자의 헌신을 믿지 못할 만큼은 현실적이었다.


요즘 기준으로야 B가 바라는 대로전업주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줄 남자를 바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B가 결혼에 집착한 것도, 결혼상대자를 찾는 데 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모두 관성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성은 안정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부여한다.

B는 적당히 평범하고 지루한 남자들이 다가오면 만났지만 오히려 자기를 연애 상대로만 볼 것 같은 남자들은 주저 없이 쳐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시대에 평범하다는 건 결혼이 더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들과 비슷하게 벌고 비슷하게 사는 남자들이 일생일대의 결정인 결혼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B는 남자들을 만나다가 결혼이 멀어 보인다 싶으면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마흔이 되던 해에 동갑내기 남자와 결혼에 성공했다.


남자는 여러모로 평범했다.


학벌, 집안, 직업이나 벌이 등 모든 편에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B는 남자의 부모가 경기도에 살다가 낙향하면서 남기고 간 그들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남편의 집안이 부유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시집의 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우쭐함도 주었다.


B가 앞으로 평생을 꿈꾸던 전업주부로 아름답고 편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주는 가능성이지, 미래에 대한 예측은 아니니까.


흥미로운 건 B의 사주에는 결혼에 대한 과한 집착이 주는 위험성을 덜어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일지의 십성이 ‘비견’이라는 것은 B가 주관이 뚜렷하지만 그만큼 고집과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걸 뜻한다.


이는 곧 ‘나’가 ‘신강’하다는 의미인데, 많은 관성에도 불구하고 관성에 깔리지는 않을 힘은 있다는 것이다.


고집이 지나쳐서 결혼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왔지만 결혼과 남자, 남편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관성이 많으면 선택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하는데 B가 ‘금’ 일간을 가진 사주라는 것도 도움이 됐다.


B는 ‘신강’했고 어쨌든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이 되는 사람을 끊어낼 수 있는 성향도 가졌다.


관성에 영향을 강하게 받고 휘둘렸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가능했다는 건 분명 중요한 장점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관성이 너무 많이 자리한 덕에 재성이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관성과 재성은 모두 현실적인 태도를 갖게 해 주지만 그 ‘현실’의 결은 다르다.


관성은 B가 그랬듯 황당할 수도 있는 이상을 추구하는 걸 막아주는 현실 감각을 제공한다.


반면에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극단의 ‘보수성’을 보이게 만드는 것도 관성의 힘이다.


재성 역시 현실적인 감각을 주는 십성이긴 하지만 재물, 성과와 관련된다는 게 관성과의 차이다.


많은 관성의 기운을 B는 오로지 남자와 결혼 쪽으로 썼는데 이는 안정과 울타리만 원하고, 스스로 뭔가 만들어내고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은 하는데 돈을 모으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려는 의지 혹은 결혼해서도 모든 경제권을 남편에게 흔쾌히 넘길 정도로 경제 감각도 없었다.


B는 남편의 만들어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꿈꾸었고 마침내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지만, 문제의 가능성은 진하게 남았다.


B에게 재성이 없다는 건 ‘관성’을 생해주는 요소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재성은 관성을 생해준다.


관성은 인성을 생하고, 인성은 ‘나’를 생한다.


이를 ‘관인상생’이라고 하는데, 관성이 ‘나’를 극하기에 부부가 상극임에도 남편이 잘되면 그게 아내가 잘되는 흐름으로 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B에게는 재성이 없어서 남편인 관성을 생해줄 ‘불쏘시개’가 없다.


또한 중간에 인성이 빠져 있어서 B 자신을 생해줄 요소 또한 보이지 않는다.


B가 신약 하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아 보이는 구조지만 B는 신강 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진짜 문제는 재성과 인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B가 자신의 신강한 힘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관성이 많고 신강한 사주는 사회적으로 기운을 써야 하고, 그러면 충분히 명예와 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데 B에게는 가정과 남편이 만든 울타리에 대한 보수성이 집착 수준으로 강하다.


B는 사주만 보면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전업주부로 살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면 본인도 힘들어지고 남편과의 관계도 삐걱거릴 수가 있다.


B의 관성은 발목을 잡으면서도 동시에 밖으로 밀어내려는 기운이다.


지금처럼 살아도 B의 신강함이 삶을 버텨내게 해 줄 수 있을까?


B는 과연 어떤 삶을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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