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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 May 23. 2023

Case 1. 뮤지컬 RENT (part1)

우당탕탕 뮤지컬 분석실, 오로시 LAB

본 포스트는 오로시 에디터들의 주관적인 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KOPIS 공식블로그


No Day, But Today. 오늘의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강렬한 이야기

뮤지컬 렌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뮤지컬 렌트

우당탕탕 뮤지컬 분석실- 오로시 랩의 첫번째 연구 대상은 바로 그 <렌트>다.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작품에 대한 가벼운 사전지식부터 시작해보자.  



보헤미안의 삶, 라보엠과 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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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RENT의 원작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라 보엠(La Boheme)이라는 오페라이다.

 예술과 가난한 삶 속에서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파리 뒷골목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앙뤼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임과 동시에 나비부인, 토스카와 더불어 자코모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국립오페라단 - 라 보엠]




    영원한 미완의 작품, 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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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데이비드 라슨 (Jonathan David Larson)

 1960년 뉴욕, 유대인 부부에게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트럼펫, 튜바, 학교 합창단,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예술, 특히 음악과 무대 예술에 많이 노출되어 왔다. 연기를 대학 전공으로 선택하여 4년간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음악 작곡에 흥미를 느껴 작곡을 시작하였다.

 그는 청년기에 뉴욕 맨해튼, 난방도 안되는 다락방에서 삶을 살아갔으며 20대 내내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8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첫번째 뮤지컬 ‘슈퍼비아’를 제작하였고, 워크숍을 진행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와 함께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입성 또한 물거품이 되었다.  30대의 좌절감과 시간에 대한 촉박함을 녹여내어 만든 뮤지컬 ‘틱틱붐’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몇몇 친구들과 아마추어 제작사만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후, 미뤄뒀던 뮤지컬 ‘렌트’를 쓰기 시작하였고 맨해튼의 작은 건물에 살며 만났던 친구들의 암울한 인생과 그들이 꾸는 이상에 가까운 꿈을 오페라 ‘라보엠’을 인용하여 제작하였다.  하지만 라슨은 렌트의 오프 브로드웨이 개막 전 날 생을 마감하였고 그의 공연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라슨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예술가, 특히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조나단 라슨 공연 예술 재단을 설립하였으며 현재 이 재단은 현재 아메리칸 시어터윙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조너선 라슨]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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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크, 한 때 잘 나갔던 음악가 로저, 댄서 미미, 행위예술가 모린, 인권변호사 조앤, 드럼연주자 엔젤, 방랑하는 무정부주의자 콜린.

 뉴욕 맨해튼 재개발단지에서 1990년대 초를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들


이들은 사회의 규칙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만의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한때 로저와 마크의 룸메이트였던 베니. 현재는 이들이 사는 건물의 주인이다. 그는 집세는 고사하고 난방비조차 낼 돈이 없는 이들에게, 모린의 건물 철거 반대 시위를 막아주면 집세 면세 혜택과 자유로운 예술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이들은 거절한다. 모린의 건물 철거 반대 시위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뒤풀이 현장에서 베니와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의 벽을 높게 세운다. 이에 화가 난 베니는 건물의 문을 걸어 잠근다.


 시간이 흘러, 새해를 맞이한 이들은 베니가 걸어 잠근 문을 무단으로 뚫고 새해 맞이 파티를 연다. 기쁨도 잠시, 찾아온 베니는 이들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심게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과 우정은 이내 금이 가 결국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출처  : [Broadway Musical Home - Rent]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자유로운 예술과 뜨거운 사랑을 추구하던 이들. 

그들의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지게 될까?




랜며들어버린 사람들의 RENT 이야기

본 에디터에겐 확고한 취향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오케스트라 속 현악기의 존재 유무다. 

음악이 핵심인 뮤지컬에서 현악기의 유무는 에디터의 뮤지컬 관극 여부를 결정하는 큰 조건이었다.  하지만 렌트를 보고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 락뮤 좋아하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렌트는 정말 강렬하게 다가와 조용히 스며들었다. 렌트를 보던 초기에는 등장인물들의 서사, 주옥같은 넘버를 기대하며 봤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렸다. 그걸 바탕으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고, 그건 렌트에게서 더더욱 빠져나올 수 없게끔 만들어주는 늪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렌며들어버린걸. 


 이제부터는 랜며들어버린 에디터의 주관적인 해석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혹여나 본인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구나 하며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1. 엔젤(Angel)과 사랑

출처 : Pinterest (Justin Talkington)


“A.N.G.E.L. 엔젤 드모트 슈나드"

 렌트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각자 가진 개성도 뚜렷하고 서사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엔젤’이다. 맞다. 그 엔젤이. ANGEL.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해 쓰러진 콜린에게 다가온 엔젤, 그게 관객과 엔젤의 첫 만남이자 엔젤과 콜린의 첫 만남이다.  


 “내 몸은 모든 세균들의 쉼터에요”

그녀는 극 내내 엔젤이라는 이름답게 주변 인물들에게 천사처럼 행동하며 조건없는 사랑과 헌신을 선물한다. 코트를 뺏긴 콜린에게 코트를 사주기도 하고 친구들의 싸움을 중재하며 길을 잃은 관광객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등 선행과 박애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녀(혹은 그)가 베푸는 사랑은 극 중 인물들의 이상향이 되기도, 쓰러진 그들을 일으켜세우고, 갈등을 감싸안는 담요가 되어준다. 따라서 에이즈 균마저 감싸안는 엔젤은 '사랑'의 현신이라 하겠다.


"난 너보다 훨씬 남자답고, 네가 가질 그 어떤 여자보다도 여자다워."

앤젤은 드랙퀸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무시 당하거나 차별 받기도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인물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 극이 끝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AIDS, 에이즈로 인해 죽게 되는데 등장도 강렬했듯이 그의 마지막도 강렬하다. 작가는 엔젤의 죽음을 슬퍼하는 우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엔젤은 처음 등장했던 모습으로 다시 무대 위에 등장한다.

 여기까지 보고 무언가 떠오르는게 있는가? 필자는 처음에는 그저 엔젤이 다시 살아돌아왔음에 박수를 보내기 바빴지만 극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어떤 존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원죄를 사랑으로 감싸안은, 예수 그리스도

성경예 따르면 그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했다가 다시 부활하여 돌아온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엔, 한 번 따져묻기도 한다.

어쩐지 엔젤의 모습이 겹쳐보이지 않는가?  


첫 번째로, 앤젤과 예수 그리스도는 공통적으로 <사랑>의 상징이다. 

다른 인물들이 사랑을 찾아 헤매고 다투고 화해하는 동안에도, 엔젤은 그저 무조건적인 변함없는 사랑, 만인에 대한 사랑을 베풀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다른 이들의 사랑이 '에로스(성적이고 육체적인 사랑)'과 '필리아(우정)'을 넘나든다면, 엔젤의 사랑은 '아가페(절대적인, 신의 사랑)'의 빛깔을 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렌트의 진짜 주인공은 엔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째로, 앤젤과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직전 생애 최초의 절규를 쏟아낸다.

엔젤이 죽음을 맞이하며 부르는 넘버 ‘Contact’를 떠올려보자. 이 넘버에서 앤젤은 신에게 제발 자신을 데려가달라며 부르짖고, 그 절규는 작품 내에서 가장 높은 고음을 통해 전달된다. 이때 엔젤이 보여주는 고음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결심하는 예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어딘가 익숙하다면 당신의 생각이 맞다.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의 Gethsemane(겟세마네) 넘버에서도 Contact와 마찬가지로 드높은 고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뇌와 절박한 애원이 표현된다. 

또 Contact는 사전적 의미로 ‘연락’, ‘접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나를 데려가달라며 울부짖는 엔젤의 모습은 마치 하늘 위의 누군가, 신에게 접촉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조너선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엔젤’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만약 연관성을 감추고 싶었다면 아예 관련 없는 보통의 이름을 쓰면 되었을 텐데, 굳이 애매한 연결고리를 남겨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RENT가 제작되던 시기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당시 미국인의 85%가 기독교인이었을 정도로, 기독교는 미국에서 압도적인 위세를 자랑했다. 아마도 그런 그들의 절대적인 목자를 직접 언급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대신 기독교에서 ‘행동자’, ‘신의 대변인’으로 묘사되는 ‘천사( Angle)’을 등장시킴으로써 작품의 메시지인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했으리라 생각한다.




2. 미성숙과 성장의 상징, 비계

출처 : 스포츠W

이번엔 RENT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에 주목해보자.

여느 무대들과는 다르게 깔끔히 마감된 구조물이나 건물이 아닌, 철골 구조만 존재한다. 그 쇠파이프들은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클럽도, 스튜디오도, 때로는 카페가 되기도 한다. 물론 슬럼가의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뮤지컬을 떠올려봤을때에는 여전히 의아함이 남는다. 

그렇다면 조너선은 왜, 일반적인 대도구나 무대장치 없이, 뼈대로만 남겨둔 것일까.


미완성과 미성숙의 상징

건축에서 '비계'는 건물을 짓기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무대를 지을 때에도 비계는 무대의 뼈대가 되고, 소대로 이어지는 백스테이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비계란, 미완성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RENT의 이야기와 비계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그 의미는 조금 더 깊어진다.

극 속에서 8명의 인물-마크, 로저, 미미, 베니, 조앤, 모린, 콜린, 앤젤-은 과도기적 시간을 보낸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투고, 화내고 슬퍼하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청춘의 한 자락에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스로의 삶을 찾고자 발버둥치는 '비계의 시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무대 전면에 드러난 비계는 인물들을 감싸는 미성숙한 청춘의 시대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소재일 것이다.


성장을 암시하는 메타포

다른 한편,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만약 비계가 없다면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성장함에 있어서 겪는 과도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도 그런 과도기 없이 자아실현을 이루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때의 비계는, 모든 사람이 겪어야하는 필수불가결한 성장의 과정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덟 인물의 관계

마지막으로 비계의 모양새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비계는 쇠파이프들이 얼기설기 매여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하중을 나누어 지탱하게끔 설계되어있는 것이다. 어쩐지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떠오르지 않는가? 8명의 등장인물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존재다.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물질적으로, 그 삶이 흩어지지않게끔 붙잡아주는 그 관계성이야말로 RENT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계는 인물 간 관계성을 가시화하는 소재라고도 하겠다.


  


3. AIDS의 서사적 의미

출처 : 무비톡

 뮤지컬 RENT 속 인물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건, 바로 불치의 병 AIDS(에이즈)일 것이다. 로저와 미미, 콜린과 엔젤은 그 모두 에이즈 환자인데다, 로저의 전 여자친구 '에이프릴'은 에이즈 발병 사실을 알고 자살했고 엔젤은 에이즈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이들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도 매 순간 에이즈로 인한 시한부 인생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왜 '에이즈'여야만 했을까?


원작 오페라 '라보엠'에서는 결핵이 등장한다. 결핵은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었으며 사망률도 굉장히 높은 병이었다. 아무래도 위생과 관련된 병이다보니 작품을 그려내는 집시의 삶, 보헤미안의 삶 속에 등장하기에 서사적 개연성을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처럼 에이즈도 RENT의 속에서 서사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에이즈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떠올려보자. 오랫동안 에이즈는 성병의 일종으로서, 문란하고 지저분하다는 낙인과 함께 해왔다. 게다가 결핵처럼 전염병인데다, 특히 불치병으로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설정을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성병, 불치병, 전염병이라는 속성을 모두 가진 질병으로서 RENT가 구현하는 소외와 고립, 두려움과 죽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NO DAY BUT TODAY의 메시지의 전달을 돕는 최고의 배경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일례로, 넘버 Will I의 가사인 'Will I lose my dignity'는 직역하자면 '나는 나의 존엄성을 잃게될까'라는 뜻이다. 그 가사로 미루어보건대 무대 위 에이즈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전과 같이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테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로서, 자신의 존재와 존엄을 공동체 속에서 찾곤한다. 이 맥락에서 dignity는 절대적인 자존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는 것으로, 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잊혀지고 고립되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이러한 정서를 극대화시켜서 나타내는 서사적 장치로서 '에이즈'가 선택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 도원, 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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