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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Jun 06. 2020

지적허영심에 지배당한 이유

게을러서 그런거 다 알아. 근데 귀찮아.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많이 보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 때때로 흥미롭지만 대부분은 지루하다. TED강연은 말할 것도 없이 댓글과 기사제목만으로 강연을 유추한다.


지식을 채우기위해 하는 행위라고는 그저 인터넷 기사 몇 줄, SNS에 올라오는 몇 가지의 글귀들을 북마크 하기(북마크해놓고는 다시는 보지 않는다),그리고 유튜브알고리즘을 타고 온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의 영상 10초씩 스킵하며 댓글 창으로 요약본 보기.


그런데도 난 아직도 지적허영심이 넘쳐난다. 노력하지 않고서 지식을 얻으려는 오만과 게으름에 지배당한 20대를 보내고 있다. 요즘같은 시국에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백수의 삶은 사는 지금에서야 이것저것해도 남아도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사실은 이 시간에 자기개발을 하면 될텐데) 침대에 앉아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의 시발점은 작년 9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에 사둔 젊은작가상수상집을 8개월만에 들어 수상작을 하나하나 읽고 각 수상작 끝에 따라오는 전문가의 작품해석란을 읽을 시점이었다. 분명 작품의 끝 마침표를 읽었을 때에는 '그렇군','이 작품이 대상이라고?','내가 이걸 읽을 수준이 아닌건가','하지만 이렇게 대중적인 책에 실린 단편소설도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냥 이 작품이 별로였던거다'로 귀결되는 오만한 생각을 한 상태로 작품해설란을 읽었다.


작품해설를 적은 평론가들은 똑똑하다. 자신의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고 그 것을 업으로 삼는 사라들이니 그들의 작품을 보는 해안은 당연하게 나의 눈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난 그들이 '친절'하게 작품을 인용하여(몇 페이지에 쓰인 글이지도 알려준다) 한 줄 한 줄 설명을 해주는데도 왜 그것을 받아먹지를 못하는것일까? 나 진짜 멍청한건가. 해설을 해설해주는 해설자도 있어야하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 혹은 의심을 하는 와중에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지적허영심에서 '허영심'을 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이해가 되질 않는그 해설집조차도 인터넷 기사를 읽는 것 처럼, 유튜브 영상을 10초씩 스킵하는 것처럼 보고 있는 나. 노력없이 결과만을 얻으려는 게으른 나.


그러다면 왜 이렇게 게으르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의 꼬리물기를 시작하며 여전히 방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여전히 뇌는 바쁘고 입은 살았지만 몸은 죽어있다.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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