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라고?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예비 신혼부부일 때 받았던 보건소 무료 검사 결과지를 받았다. 이 검사는 대체로 임신 준비에 필수적인 결과치를 보여주는 데, 난소/정자의 나이를 추산하여 알려준다. 늦은 결혼이었으니 예상은 했지만, 난소 나이가 많이도 늙었다.
좋지 않은 결과에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후속 조치로 해당 검사지에 쓰여진 강남 00병원으로 당장 전화 예약을 넣었다. 지나고 보니, 좀 과하게 말하면 나는 해당 병원의 질 좋은 전단지를 받았던 것이 아니였나 싶다.
피검사도 하고,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질 내시경도 받았다. (애 둘을 낳고 기르도록 이 질 내 시경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기다리면서 유튜브에 '난임'을 검색했다. 슬픈 사연들에 감염된 것처럼 나도 덩달아 우울하고 불안해졌다. 남일 같지 않았다.
처음 상담 간 날, 의사 선생님은 재촉하듯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임신을 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
그 후 다음 일주일 동안 난 아이없이 평생을 살게 된 사람이었다가 기적처럼 난임을 극복한 사람의 마음이 됐다가 오락가락했다. 심란한 마음에 간호사인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한살 차이인 언니는 맞벌이였던 부모님을 대신하는 준 엄마이기도 하고, 세상 둘도 없는 절친한 웬수도 되어주는 전천후 내 사람이었다.
조영술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언니는 곁을 지켜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예의 그 재촉하는 말투로 "인공수정은 늦으니, 바로 시험관도 가능하다. 예약 일정을 잡으실거냐" 물었다. 나라의 지원이 늘고 있지만 적은 비용은 아니다. 짐짓 전문가처럼 결과지를 보던 언니는 아직 신혼이니 자연 임신을 한 3-6개월은 시도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소견을 밝혔다. 나는 서두를 것 없다는 듯한 언니의 말에 힘 입어 "생각해 보겠노라"며 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 후, 남편과 몸에 나쁘다는 건 피하고 몸에 좋다는 해독주스, 운동을 꾸준히 해가며 건강한 일상을 보냈다. 엽산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고, 관계의 시간이나 장소도 바꿔가며 임신에 대한 일상적인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달거리를 건너뛴 어느 날, 임신 테스기에 두 줄이 생겼다.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아닐지도 모르고, 또 임신 초기 3개월 전까지는 안정기라고 할 수 없으니" 내내 중얼거렸다.
산부인과에 임신 진단을 받으러 갔다. 몇 센티도 채 되지 않는 아기 집이라며 1주일 후에 보시자고 하셨다. 그 일주일 내내 이랬다 저랬다 중얼중얼했던 것 같다. 임신을 알고 나서였을까? 아니면 그 전부터 였었나? 내내 피곤했다.
콩알만한 아기집 초음파 사진을 받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안정기에 들어서면 부모님께 말씀드려야지 했다. 부모님이 100% 좋은 반응을 하실까 확신이 없었던가. 임신 기간 내내 나는 온 신경이 몇 센티 되지도 않는 뱃속에 아이에게 곤두서 있었다. 그 조그만 녀석이 나를 좌지우지해대던 어느 점심 시간에 나는 참지 못하고 엄마께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엄마, 내가 사춘기 때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했던거 미안해. 몰라서 그랬어,
임신이 이런건지 몰랐어. 아이가 생긴 게 이렇게 나를 쓰는 일인지 몰랐어. 엄마가 그랬는지 몰라서 미안해"
그렇게 울고 불고 했지만, 나는 그 때나 지금까지나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나보다 한참 어렸던 나이에 엄마에게 나는 참 못할 말을 많이도 했다.
엄마가 뭐라 답했더라?
"너 같은 딸 낳아 봐라, 꼬숩다"하시며 웃었던가, "괜찮다, 잘 할 수 있을꺼다" 울먹이셨던가
엄마한테 물어야 겠다.
그것 말고도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다.
결혼도 임신도 알거 다 아는 나이에 겪어낸다고 하는데도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집을 나와 40년 가까이 모르는 남자와 같이 살 때 필요한 것들과
관계를 가지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수정란이 내 속에 '자궁'이란 장기에서 아기로 자라난다는 거. 미리 좀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당혹감이 좀 나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말을 얼버무려도 오늘은 한번 꼬치꼬치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