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2] 어서와 아가야, 세상은 처음이지?

근데..엄마 아빠도 너가 처음이야..ㅠㅠ

by 어머나

회복실로 옮겨졌다가 병동으로 내려왔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출혈이 있어서 수술도 회복도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단다. 병동에 돌아오니 그제야 찢겨진 배가 오롯이 아프다. 진통제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도 아프다. 마취가 풀리면서 다리 감각이 살아나자 소변줄의 불편함도 생생해진다. 혹자는 말했다. 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라고.

의학적 소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지만 같은 날 분만했는데 벌써 몸을 일으켜 걷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자연분만 산모를 보니 부럽고 지난 선택이 조금 아쉬워진다.


그 밤은 길고 또 많이 아팠다. 간호사 선생님이 울혈이 생기면 안된다고 받는 이의 입장에서 무자비하게 배를 누르셨다. 그리고 되도록 열심히 걸으라고 조언해주셨다. 아이가 있는 신생아 병동은 중문을 지나 병동에서 꽤 걸어야 했다. 보통 걸음이라면 가깝다 했겠지만 배를 꼬멘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태로는 한 걸음이 천길 만길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아이를 보러 갔다. 아직 빨갛고 작은 아기도 열심히 세상에 적응 중이었다. 하루가 지나자 신생아실 선생님이 수유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게 나의 첫 엄마 노릇이었다. 나는 아이를 나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결단코 아니더라.

팔뚝만한 아이를 젖가슴에 대어도 눈도 제대로 못뜬 아이는 젖을 찾지 못하고 물지도 못했다. 그 난감함이란. 출산한 세 엄마 중에 이틀 차에 한 엄마만 초유 수유에 성공을 했다. 서른 아홉이나 먹은 엄마인 나는 무지하고 서툴렀다.

이틀 동안 열심히 수유를 시도했고, 감격적인 첫 수유의 성공에 대한 기쁨도 잠시. 퇴원하기 전 날, 언니가 아이를 보러왔다. 언니와 신생아실로 면회를 왔는데 창가 앞에 있던 아이가 없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오는데, 아이의 두 눈에 테이프가 붙여 있다.

황달 수치가 높아져서 다. 신생아들에게는 흔히 발생할 수 있다는 말에도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안하고 서글펐다. 더 나아가 꼭 내가 아픈 것 같다. 출산을 했지만 여전히 나인지 아이인지 모를 때였던 거 같다.

다행히 수치가 나아지는 추세여서, 추적 관찰을 하기로 하고, 퇴원을 결정했다. 그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나는 조리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가 나와 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나는 엄마 아빠한테 마저도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 배가 당기고 몸이 좋지 않았지만 기어코 아이를 내가 안겠다 고집을 부렸다. 엄마 아빠가 억지로 아이를 안으려 했다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의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예민한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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