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오미 May 08. 2024

선생님, 서운해요!

영어공부방 운영 4년차 원장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저학년 아이들이 재잘재잘 거리며 들어온다. 귀엽지만 이 재잘거림을 다 받아주려면 수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이텐션 인사로 맞아주며 서둘러 공부모드로 전환시킨다.


간혹 여자 저학년 아이들 중에, 친구들이나 나에게 '돌려쓰기 화법'을 쓰는 친구들이 있다. 뭐라할 정도로 크게는 아니지만 들었을 때, 자꾸 누군가를 탓하는 말투라, 살짝 신경이 거슬리는 말투다.


나는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지만, 예의없는 말투, 행동은 제재한다.


긴 연휴를 보내고 온 날, 돌려쓰기 화법을 쓰는 저학년 여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서운해요!
저 책가방 바꼈는데
그것도 모르시네요!


"당연히 모를 수 있지?!!"


(당황한 아이가) 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나는 네가 가방을 바꿨는지 모를 수도 있어. 왜 가방 바꿨는데 모르냐고 먼저 서운해 하지 말고, 선생님~저 가방 바꿨어요~ 보세요~라고 기분좋게 말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럼 너도 서운할 일이 없잖아."



사실 나도 예전에 남편에게 이 '돌려쓰기 화법'을 많이 사용하곤 했었다. 예를 들면, 음료수가 마시고 싶으면 "음료수 마시고 싶다"고 하면 되는데, "날이 너무 덥다"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남편은 나랑 연애와 결혼을 하면서 내가 이 화법을 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알아먹긴 했지만, 딸마저 이 화법을 쓰기 시작하자, 에게 정색을 하고 얘기했다. 


"네가 원하는게 있으면 그걸 정확하게 얘기해.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그렇다. 나는 여자친구였고, 부인이니까 그 짜증나는 화법을 참고 견뎌, 조율하며 어찌저찌 왔어도, 딸까지는 이 화법이 대물림 되는 것을 용납 못하는 것이다. 아주 그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저 단호함.


사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주 운이 좋아서 내가 돌려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는 이들이 옆에 있다면 천만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몰라준다고 다짜고짜 서운해 하기 전에, 먼저 알려 주고 말하자. 어릴 때 부터 가르치고, 나이 들수록 더욱 그리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가 군대에 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