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역설
부동산 펀드 자문이나 컨설팅을 진행하다 보면, 최근 가장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칙칙하던 주유소가 헐린 자리에 어김없이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데, 십중팔구는 스타벅스 DT(드라이브 스루)이거나 맥도날드, 버거킹이다.
글로벌 1등 기업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왜 하필 토양 정화 비용까지 감수하며 주유소 땅을 탐낼까? 여기엔 철저하게 계산된 '매출 방정식'이 숨어 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공간의 유전자가 같다'라는 점이다.
주유소와 DT 매장은 본질적으로 '차를 탄 고객'을 상대한다. 주유소는 태생적으로 감속 차로와 가속 차로가 확보된 곳이다. 인허가 과정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진출입로 확보'가 이미 해결된 땅이라는 뜻이다. 맥도날드 입장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입지는 없다.
여기에 빌보드 효과(Billboard Effect)가 더해진다. 주로 사거리 코너나 대로변에 자리한 주유소는 그 자체로 거대한 광고판이다. 신호를 기다리는 운전자가 무심코 바라보는 그 자리에 거대한 햄버거 간판이 걸린다. 수천만 원짜리 TV 광고보다 더 강력한 각인 효과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상권의 성격이 바뀐다는 것이다. 과거 주유소는 기름만 넣고 1분 만에 떠나는 '스쳐가는(Flow)' 공간이었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다르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 즉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서고, 햄버거를 먹기 위해 그곳에 머무른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주유소 편의점이 신선식품과 샌드위치를 파는 고메(Gourmet) 스테이션으로 진화했다. 한국은 아예 F&B 전문점으로 직행하고 있다. 이제 주유소 자리는 단순한 도로변 땅이 아니다.
목적성 없이 지나치던 길을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핫플레이스'로 바꾸는 마법. 이것이 바로 1등 브랜드들이 기름 냄새나던 그 땅에 전략적으로 출점하는 진짜 이유다.
1등 기업이 선택한 자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막연한 감 대신 그들의 계산기를 빌려 당신의 안목을 검증해 보십시오. 분석 과정에서 37년 차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의견 남겨주세요.
상권전략 컨설턴트 권영산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