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회에 닿는 헤맴

by 볕뉘

눈여겨 봐뒀던 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본점이 멀지 않은 포항에 있다고 해서 차로 나선 참이었다. 그날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때까지도 잘 가고 있었고, 무언가 잘 풀리는 느낌에 기분까지 제법 만족스럽게 좋았다.

그런데 도착까지 30분이 남았다던 내비게이션이 자꾸만 경로를 다시 탐색하고 그때마다 도착 시간이 늘어난다.

‘이 길이 아닌가?’

분명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라고 했다. 그런데 수상한 길에 들어선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시선이 닿는 저 멀리까지 논두렁밖에 보이지 않으니 의아하다. 의문을 다시 탐색하지 않고 몽니를 부렸더니 회백색 시멘트로 대충 공구리 쳐 놓은 길마저 끊겼다. 그리고 언제나 뒤늦은 인정. ‘이 길이 아니네.’

또 길을 잃었다.

마지못해 그 사실을 수긍해야 할 때면, 수면을 뚫고 떠오르는 공기 방울처럼 별안간 하나의 감각이 마음에 파장을 만든다. 가슴 중앙에서 배 아래까지 순간 뭔가 덜컹 떨어져 내려가는 떨림, 불안감이다. 그 느낌이 싫어 언제나 실수의 납득을 끝까지 미뤘고, 덕분에 자주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불안은 머리까지 덮어씌운 망태기 같아서, 보통 평범하게 잘하던 일도 어렵게 한다. 1시간 반이 걸린다던 길을 2시간 반이나 걸려 간 이유다.


동해, 하면 모래사장과 주변으로 아기자기하게 난 암초를 흔히 떠올리지만, 사실 상당 부분은 절벽이다. 카페는 그 절벽 위, 겨우 가능했던 조금의 평지에 얹혀 있었다. 바다로 낸 커다란 통창은 좋은 풍경만 투영했고, 아래로는 작은 잔디정원이 딸려있었다.

커피 한 잔의 시간에도 사람은 수십 가지의 표정을 짓는다. 그런 사람 수십 명이 바다 쪽으로 앉아 감정을 발산하는 순간은 적잖게 소란했다. 꽉 찬 소리의 공간 속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차분히 앉았다. 잘 로스팅된 검은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입안에 머금으며 길 잃어 헤매던 불안함을 가라앉힌다.


그러고 보니 한번에 길을 찾는 때가 잘 없었다. 지하철이나 건물처럼 닫힌 공간을 벗어나 야외로 나올 때는 더 그랬다. 출구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틀린 방향으로 가버리기 일쑤였다.

시야가 막힌 골목길도 다르지 않았는데, 길이 애꿎게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무리하게 방향을 바꿔보면 그대로 영영 다른 곳에 닿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제대로 보지 않아 길을 놓쳐 놓고는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는 뱃심을 부리다가 아주 늦어버렸다.

그래서 이동할 때는 언제나 여유를 두려 한다. 이날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시간보다 30분은 여유를 두고 움직였을 터다. 그런데도 아니나 다를까, 일찍 출발한 만큼의 시간은 고사하고, 계획했던 시간보다도 훨씬 늦었다. 그만큼 엉뚱한 곳을 뱅글뱅글 돌았다.


기업에 입사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생 참 지루하게 풀린다.’

길면 30년, 적어도 20년은 그곳에서 일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새출발의 설렘보다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미래가 진즉 따분하게 다가왔다. 앞서 그 길을 먼저 살아간 이들 중 그것을 행복하다고 하는 이를 보지 못했던 이유가 컸다.

하나 같이 일도, 가정생활도 마지 못해한다는 식으로 ‘사는 게 다 그렇지.’하는 정도의 인사이트로 살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런 세태에는 의욕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지루했다.

하지만 보이는 길을 걷는 안온함을, 지루한 것이라 하는 태도가 금세 혼쭐이 났다.

일상은 찰나에 돌변했다. 인생은 어느 한 때가 되면, 잠시간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선택을 강요하고, 급기야 길을 벗어날 때마다 엄격한 패널티를 내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입사했던 기업이 자회사를 설립할 때 과감히 자리를 옮겼던 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이 됐다. 거기에 2014년, 국내 금융기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태풍과 함께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고, 몇 년간 쌓은 하잘없는 커리어에 자존심이 붙어 몽니를 부렸고, 적잖게 낙심만 하고 일을 관뒀다.

분명, 길을 잃으면 조급해진다.

가던 길을 벗어나자, 불안의 알약을 삼킨 듯 가슴은 의지와 관계없이 자주 급하게 뛰었다. ‘번아웃’이 필요했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아버리면 그 틈에 모두가 타버릴 것 같았으므로 자족할 틈은 없었다.

삶의 작은 소망이 되는 지점, 우연이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작은 구원을 만들어 내려는 마음은 겨우 지켜내고 있었지만, 조급한 마음은 좀처럼 그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퇴사 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특이점을 찾는다.

대구에는 ‘앞’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그리 높지 않아 도망치듯 뛰어 올라가기 좋은 산이다.

산을 오를 때는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천천히 보며 가라지만, 그때는 길에서 벗어나 헤매고 있는 자신을 처벌하려는 듯 화가 나, 숨이 졸리는 감각을 좇아 급히 달려 올라가고는 했다.

언젠가 658미터짜리 정상까지 한번에 내달려 올라간 날이다. 체력이 올랐는지 숨이 막히지 않아, 좀 더 가쁘게 내달리려 걸음을 떼는데, 무릎까지 자란 풀숲 사이로 노란빛 바랜 키 작은 벤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외롭지만 강직해 보여 그 쓰임을 찾아주고 싶었다. 호흡이 가라앉는 건 아쉽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도 있던 참이다. 곧 그 오른쪽 귀퉁이 한켠에 앉았다. 지난날 그랬던 것처럼, 길에서 벗어나서.

이마에 반짝이는 길을 만들며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에 닿기 전 닦아 내고, 그 소금기 어린 물 묻은 손을 옆에 내려놓으니, 느린 바람이 손가락 틈을 지나 시원하다. 곧 기특하게 잘 자란 풀잎 몇 개가 손등 위를 쓸어내린다. 손을 움직여 풀잎의 아랫부분을 위로 천천히 쓸어 올렸다. 손길을 따라 고개를 드는 그 풀잎과 눈이 마주치자, 그 존재는 ‘여기까지, 고생했어.’하고 인사하는 듯했다.

잘못 든 길을 틀린 길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일상의 훼손이고, 서둘러 정상궤도로 회귀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른 길도 좋구나.’ 라고.


몇 달 뒤 국가직 공무원을 합격했지만 임용된 지 정확히 반년 만에 다시 그만뒀다.

퇴사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법학을 진중하게 공부해 보고, 냄비 받침으로 쓰기 딱 좋은 두께의 책도 한 권 냈다. 그 덕에 지방의회에 자리 잡았고, 마침 그곳에 조용히 숨어 반짝이던 별을 만났다.

우리는 은백의 잠잠한 바다 속 고요하게 있던 흰동가리들과 소란스러운 여름을 보냈고, 열대의 하늘을 잠깐만에 갈라버린 붉은 유성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한겨울의 빗속에서 번갈아 코를 훌쩍이며 온종일을 돌아다니고, 허리춤까지 눈 쌓인 설산을 걸었다. 마침내 돌아보니 잘못 들어 걷게 된 그 길마다, 그 헤매었던 과정마다, 호흡했던 순간들이 금빛으로 남았다.

그러니 기왕 잘못 든 길이라면, 한 걸음에도 많은 걸 보고, 감각을 열어 느끼면서, 그 순간을 헤쳐나가는 모양에 의미를 두면 어떨까.

길 좀 잘못 들 수도 있지. 그러면 어때.

나는, 너도. 우리는. 길치라 엉뚱한 기회에 닿기도 하니깐.

구불구불하게 가도, 온갖 경험 끝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르러도 더 좋을 수 있다.

길은 유일하지 않고, 잘못 든 곳이라도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았다. 키 작은 벤치 옆 다정한 풀잎의 위로와 당신의 작은 별이 다시금 방향을 잡아줄 거다.

나는 길치라, 다분히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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