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블루는 화이트다
알코올 도수가 52도나 되는 고량주를 처음 마신 탓이다. 친구는 타는 것처럼 귀가 붉어지더니 돌연 지난날 새벽의 우울감을 털어놓는다.
“어제 병가였거든, 근데 2시에 깬 거야.”
좀처럼 그런 적이 없던 녀석의 기세가 꺾인 모습에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을 지어봐도 그 기분이 내 것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아이고.’하는 정도의 염려를 전한다. 섣불리 하는 위로는 되려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술이 된 한 녀석이 붉은 얼굴로 웃으며,
“너의 블루는 화이트다.”고 잔을 내밀어 부딪힌다.
“아니, 블루라니깐 왜 화이트라고 해.”
우울했다던 친구는 딴지를 걸면서도 함께 잔을 맞댔다.
당장의 위로는 대부분 실패한다. 표현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정해져 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의 상황은 디테일하게 전부가 다르다. 위로가 맺어져 성사되는 순간은 흔치 않고, 위로를 받아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힘내.” 하는 말에, “그래, 힘내 볼 게.”하고 쉽게 웃어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내 우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하고 자신만의 탑으로 올라가 버리면 위로가 닿지 않는다. 지상에서 멀어져 마음을 탑 꼭대기에 두고 있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라는 상상의 허무인을 만들어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아닌지.
그런 욕심은 버렸으면 좋겠다. 위로를 시도하는 마음의 애씀을 무시하면서, 더 나은 존중이나 대접을 바라는 욕심말이다. 다른 결핍을 위로라는 형태로 채우려 하지 않았으면.
분명, 위로 받을 자격 같은 건 따로 없지만, 위로가 작용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울다가도 금방 다시 웃고, 토라져도 오래 걸리지 않는 사람. 신날 때면 걸음이 바뀌고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는 사람. 옥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서야 위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런 사람들을 순수한 사람이다.
그리고 순수는 언제나 위로하려는 시도에 감동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