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했다는 흔적보다 중요한 건 존재하는 지금
한파경보가 내려진 날이다. 수도관이 얼어붙어 터져버릴까바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열어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했다. 잠시 서서 낙하하는 물방울을 내려다보다가 그 앞에 앉았다.
물방울은 수도꼭지 끝에 치즈처럼 늘어지듯 맺히는가 싶더니 고물줄이 끊어지듯 바닥으로 튕기어 떨어졌다.
무수한 물방울이 같은 모습으로 떨어졌지만 바닥에 닿는 위치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물방울은 수도관 가까이 떨어지고 어떤 건 바깥쪽으로 날아가 배수구 가까이 떨어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떨어진 물방울들은 하나의 커다랗고 동그란 흔적을 만들었다.
그 위로 물방울을 덧대어지며 그 커다란 흔적이 유지된다. 이 흔적이 유지된다는 건 어디까지나 수도관이 얼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도 비슷한 모양의 물방울로 시작했지만 끝마침은 다르다. 누군가는 안쪽 좋은 자리에, 다른 누군가는 바깥쪽 마른 곳에 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보이는 건 삶이 겹치고 겸친 하나의 큰 흔적이다. 개개인의 자국은 ‘우리’라는 흔적에 섞여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남은 자국이 아니라 수도관이 아직 얼지 않았고,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떨어지며 끝을 향해가는 인생의 탄착점을 좋은 자리에 놓는 일보다,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일이 먼저이지 않을까?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하는 건 떨어지는 물방울이지, 물방울이 남긴 흔적이 아닌 것처럼.